가능은 하다.
하지만 추천하진 않는다.
중간에 평창동이든 우이동이든 이탈할 수 있도록 버스정류장도 지나가니 굳이 힘들게 하루 9시간이 넘는 시간을 걸어가며 극기를 할 필요는 없다.
빨래골이 8코스의 중간지점으로 보이는데, 둘레길 8코스를 양분하실 분이라면 이곳에서 끊어도 될 것 같다.
아니 그냥 둘레길을 여기서 끊어서 9개 코스로 만들었다면 좀 더 다가가기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어쨌든 난 했다.
한번에 돌았다.
그냥 지지부진 나중으로 미루기 싫고 한번에 끝내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울둘레길 1~7코스를 돌며 끌어올라온 나의 체력이 8코스 당일치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1~7코스는 8코스 당일치기를 위한 몸만들기일지도 모르겠다.
안내지도에는 34.5km에 17시간으로 예상되어져있으나, 거리는 더 길었고, 시간은 더 짧았다.
42km에 9시간 10분.
이렇게보니 시속 4~5km로 걸었다는걸 알 수 있겠군.
2019년 10월 초.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씨가 우중충한 것을 깨달았다.
음... 뭐 더운것보다 낫나하는 생각으로 서울둘레길을 마무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전날 둘레길 7코스를 돌며 말미에 극단적으로 떨어진 체력에 고생을 해서 오늘은 준비를 단단히 한다.
잘 먹지도 않던 오메가3를 두알 삼키고, 김밥과 물 등 중간중간에 체력보충할 아이템을 구비한다.
마음가짐을 새로했고, 전의가 불타올랐다.
비온다 망할.
그래... 북한산에게 패배한 그날의 수치. 그 때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
복수전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군.
구파발역에 도착하니 아침 7시 7분. 럭키세븐이 둘이나.
처음에는 은평구의 아파트촌 냇가를 따라 걷는다.
저 멀리 북한산의 웅장한 자태가 보인다.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오악이라 불리우는 북한산.
용마산, 관악산, 봉산과 더불어 서울둘레길의 외사산 중 하나 북한산!!
보기에도 흉악하구나.
구파발역에서 나선지 어느덧 몇십분이 지나 선림사에 도착한다.
그리고 도장을 찍고 본격적인 북한산 둘레길에 합류. 등산이 시작된다.
참고로 이날 비가 와서 그런지 우체통이 젖어있었는데, 그래서 도장찍기가 좀 번거로웠다.
시작하고 얼마안되어 잠시 인가를 걷게되는데, 여기에 있는 '불광사'라는 절의 화장실을 쓸 수 있다.
시설이 깨끗하니 암자 화장실이라고 괜히 위생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음.... 북한산 둘레길과 중첩되어서 그런가 중간중간에 간이화장실도 있었다. 화장실을 찾지 못해 곤란했던 1코스 수락산 불암산 루트보다는 낫지 싶었다.
자비가 없는 돌길. 나무길. 계단길. 힘들어.
서울둘레길 8코스의 북한산 둘레길 중첩코스는 나름대로 구간마다 구분을 두어 테마를 설정하였다.
서울둘레길 8코스의 정방향은 이러한 테마길의 역방향이다. 즉, 북한산 둘레길 8코스부터 시작하여 7코스, 6코스... 그리고 1코스까지 다다르게 된다.
각 테마길마다 명칭도 아름답다.
8코스의 구름정원길, 7코스의 옛성길 등. 각 구획의 성격에 맞게 명명되어 있었다.
두번째 우체통이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하지만 8코스에는 6개의 우체통이 있으므로, 빨리 나오는게 당연한걸지도.
편한 길도 있고.
옛 성길이라 하더니 성터를 지나가네. 여기는 탕춘댓성.
드라마에 자주 출몰하던 평창동을 지나간다.
뭔 성벽이 있어?
저거 게이트 앞에 골렘인가?
지대마저 높아서 인가를 굽어보는게 진짜 성이 따로 없네.
웬지 역사적일 것 같은 건물도 지나간다.
평창동은 사람사는 마을이긴 하지만 편의점은 없다.
...
부자들은 그런거 필요없나보다.
요상하게 생긴 외관의 건물들도 지난다.
연화정사.
시간을 체크해보니, 여기까지 오는데에 3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근데 예상대로라면 여기까지 오는데에 6시간은 걸렸어야했다.
...
당일치기 성공에 대한 확신이 샘솟았다.
세번째 우체통을 지나면 북한산 둘레길 5구간. 명상길에 돌입하게 된다.
사실 이쯤되면 이런 테마에는 관심이 없어진다.
아 물론 주위를 둘러보며 자연을 만끽하고 여유롭게 도는 사람이야 이런 테마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으며 둘레길을 돌 수 있겠지만.
난 전투적으로 당일치기를 목표로 하고 있던지라 이런거 눈에 안들어왔다.
명상길 구간에서 멧돼지도 만났다.
생각보다 작았는데도 섣불리 다가가기 겁나더라.
사람들도 멧돼지가 길가에서 숲으로 들어가길 기다렸다가 모습이 어느정도 멀어졌을 때 얼른 건넜다.
둘레길 8코스는 산과 시내의 반복이다.
즉, 뭐 평창동에서는 아니었지만, 편의점이 자주 나온다.
음... 물론 길이가 무지 길고, 등산로에 걸쳐져있어서 편의점이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어찌되었든 편리했다.
핫식스 대포알로 하나 구입. 에너지를 충전하고 계속 걸었다.
저 바람소리 숲. 진짜 이름 잘지었다.
주욱 들어가서 소리를 듣노라면, 바람의 소리가 너무나도 명확히 들려서 대자연속의 나를 느낄 수 있다.
곳곳에서 볼 수 있던 멧돼지 주의보.
네번째 도장을 찍으며 북한산 둘레길 3구간, '흰구름길'에 들어간다.
여기서는 수유동 빨래골 공원이 있는데, 여기가 중간지점즈음 되므로, 둘레길 8코스를 양분하여 완주할 사람은 여기서 일정을 마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흰구름길'은 서울둘레길 8코스 중에서도 가장 힘든 코스였다.
왜냐면 오르고 내리고를 계속 반복했기 때문이다.
체력보전 차원에서라도 여기서 한번 멈추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1시는 됐으려나? 혹은 2시? 아니, 1시 반정도 되었으려나,
둘레길을 시작한지 6시간쯤 지난 이 시점, 나는 둘레길 8코스에서 가장 수려한 장관을 보게 된다.
4.19 국립묘지.
둘레길은 높은 곳에서 이 장관을 관망할 수 있는 곳으로 날 인도하는데, 점심주먹밥을 먹으며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4.19국립묘지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동네에 다시 방문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북한산이 끝나고 잠시 우이동으로 나온다.
우이동 전철역을 지나치므로 여기에서 집으로 가는 것도 좋다.
도봉산역. 완주까지는 앞으로 2시간정도 더 걸어야 한다.
다섯번째 우체통을 지나 연산군 묘역도 걷는다.
연산군 묘가 서울에 있는 줄도 몰랐거니와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있는줄도 몰랐네.
걍 사람사는 인가 한켠에 자리잡고 있더라.
10년도 더 전에 살던 호원동.
반가운 마음이 물씬 느껴지는 이정표였다.
폐목으로 만든 인상깊던 길.
사진이 기울어진걸보니 이 때에도 엄청 힘들었나보다.
2019년 10우러 당시 오픈한지 얼마 안된 신상 사찰이 있었다.
하아... 마지막 우체통이 보인다.
드디어 끝났구나.
서울둘레길 8코스. 그리고 서울둘레길 전코스.
시간은 4시정도.
비단 둘레길 뿐만아니라 도봉산에서 하산하는 사람들로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홀로 뿌듯함을 감춘 채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망할 하산하니까 하늘에서 구름이 걷힌다.
내 마음의 구름도 걷힌다.
끝.
시작점이 종착점과 같은 서울둘레길. 드디어 끝냈구나.
1코스 시작날 아침. 도봉산 역에 내려서 어리버리 스탬프 잉크를 찾던 것이 생각나네.
8개의 코스를 돌면서 손에 움켜쥐고 있던 지도는 결국 갈기갈기 찢어져 걸레짝이 되어있었고,
내 행색 역시 그 지도와 마찬가지로 말이 아니었다.
난 운동을 싫어한다.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르길을 '넌 근육이 없잖아'할 정도로 난 운동을 못하고 안한다.
그래서 서울둘레길 완주는 나에게 큰 도전이었고, 보람도 있었다.
특히나 8코스는...
뉴질랜드의 포도밭 에이스, 통가리로 크로싱 때 이후로 세번째로 나에게 초인모드를 발동시켰다.
42km. 9시간 10분. 그리고 5만 3천보.
뭐 군대에 있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다시 봐도 뿌듯하네. 굳이 안해도 됐는데 ㅎㅎㅎ.
도봉산 역을 관통하여 시작지점. 맨 첫 우체통이 있던 서울창포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서울창포원 서울둘레길 안내센터에서는 직원들이 이미 나보다 앞서 도착한 완주자에게 증서를 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한테 묻는다.
"인증서 받으러 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