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버스안. 저 멀리 영도로 가는 부산항대교가 보인다.
내 정신머리처럼 사진이 뿌옇게 나온게 마음에 든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고생을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거리상으로는 그렇게까지 멀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간절곶에서 영도등대가 있는 태종대까지 가려면 버스를 4번타야 한다.
다시 울산으로 되돌아가서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빙 돌아가는데다가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180번 버스를 갈아타는데 버스가 유독 오지 않아서 곤란했지만, 어쨌든 도착은 했다.
울산에서부터 느낀거지만, 간혹 이렇게 지도앱의 시간대로 버스가 오지 않으면 상당히 초조해진다.
영도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체감상으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지는 않았다.
하루 웬종일 비몽사몽했던지라 눈을 감고 뜨면 몇십분씩 지나가있어서 괜찮았다.
용케 하차지를 지나치지 않고 제때 잘 내렸다.
부산에 다다르며 센텀시티가 보였다.
역시나 으리으리했다.
그리고 부산항대교를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5년 전 부산에 사는 친구와 같이 방문해서 놀았던 영도의 태종대에 도달했다.
날이 너무 좋아 마음이 설레었다.
평일 오전인데다 코로나까지 겹쳐서 태종대앞은 인적이 드물었다.
지도를 보고 안심했다.
지도앱으로는 태종대 입구에서 등대까지의 루트가 자세하게 나와있지 않았는데, 지도를 보니, 등대까지 가는 길이 단조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냥 길을 따라 죽 가기만 하면 된다.
양갈래길이 있지만, 어느쪽으로 가도 등대에 도달하게 된다.
원랜 저 버스를 타려고 했었다.
예전에 왔을 때에는 '코끼리 버스'라고 불렀었는데, 다른 명칭이 있었다.
여튼 코로나 사태로 인해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운행하지 않았다.
2km.
내 기억으로는 여기 분명 고생고생 올라가야 하는 언덕길이다.
언덕길 2km라... 평지라면 가뿐한 길인데... 지금 이 상태의 나한테 2km의 언덕길은 어느정도의 고난일까...
여기서 난 왼쪽으로 갔지만, 원형으로 되어있는 길인지라 어느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다만, 왼쪽으로 가면 좀 더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게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그나마 완만한 길을 가게 된다.
푸른 녹음이 우거지는 산책길이 좋았다.
하지만 벌써 봄이 가는구나. 올 봄에는 제대로 된 꽃구경을 못했구나. 라는 생각에 좀 아쉬운 기분도 들었다.
고생고생 언덕길을 올라가 좀 더 전진하다 보면 저 멀리 아래쪽에 등대가 보인다.
오늘의 마지막 미션이다!
원형길을 이탈하여 등대로 내려가는 길.
난 가파른 길을 선택하여 돌계단을 내려가게 된다.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다른 등대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좀 더 관광화된 등대라는 점이었다.
등대의 기능에 더불어 많은 이들이 찾아올 수 있게끔 까페도 있었다.
영도등대의 개방시간은 위와 같다.
저 멀리 '주전자 섬'이 보인다.
예전에 친구랑 저 섬을 배경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었다.
그리고 비로소 자각했다.
'아 나 여기 와봤었구나!'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예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등대에 방문을 안했다고 생각했었다.
등대를 봣던 기억이 없었으니까.
근데 그 때에는 등대의 존재가 나에게 희미해서 기억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근방의 경관을 보고 있자니, 친구랑 돌아다녔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스탬프를 찾기까지 좀 애먹었다.
등대와 붙어있는 건물쪽에서 스탬프를 찾았는데, 웬일인지 보이지 않던거였다.
게다가 사무실같이 생긴 쪽은 코로나사태로 인한 접근금지 안내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걸 어쩐다?
어쩌긴. 전화해봤다.
친절한 등대지기의 안내에 따라 위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고, 오늘의 마지막 미션도 완수할 수 있었다.
짠~! 고생 많았다 오늘 ㅠㅠ.
12번째 등대 영도등대 완료다 ㅠㅠㅠ.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손을 많이 타서 그런지 도장이 뿌옇게 그지같이 찍혔다.
참고로 위의 사진에서 난 왼쪽 평평한 길로 가서 고생했다.
오른쪽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약간만 전진하면 쉽게 등대스탬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나저나 이걸로 이제 남은 등대는 세개로 줄어들었다.
오동도 - 소매물도 여정을 마치고, 호미곶에 가서 마지막 등대를 찍으면 드디어 이 길고 비싼 여행이 마무리될 것이다.
....내년 말 안으로 완료해야 할텐데...
날씨와 바람이 너무나도 좋은 날이었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다시 되돌아갔다.
저기가 아마 G20이 열렸던 곳이었지?
친구랑 그런 이야기를 하며 저 앞을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날씨가 너무 좋다. 질투날 정도로 좋다.
지난번에는 흐리멍텅한 날씨여서 이 매력을 한껏 느끼지 못했었다.
푸른 녹음과 햇살, 검게 그을린 그림자마저도 경이로울만큼 이뻤다.
원형 산책로의 마지막은 시작점과 같다.
운행하지 않고 있는 코끼리 열차, 아니, 다누비열차가 다시 보인다.
자 이제 일정은 끝났고....
고민을 좀 해보기로 했다.
휴일은 내일까지다. 그러므로 굳이 지금 서울로 갈 필요는 없다.
부산에서 1박을 하며 여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 서울에 올라가서 집에서 하루를 쉴 것인가.
난 후자를 택했다.
지금 이틀째 씻지 못해서 온 몸이 찝찝한 상태였고, 몸도 정신도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밀면 한그릇을 먹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부산역 도착.
어찌나 식사를 빠르게 끝냈는지, 영도에서 남포동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왔는데, 부산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탈 때 환승이 되어서 버스요금을 아꼈다.
.....마냥 좋지만은 않다. 좀 더 부산을 즐기고 상경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온 부산은 그 면모가 꽤 달라져있었다.
전체적은 뷰도 그렇고, 부산역 건물 바로 앞에 전철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생겼다.
내 기억으로는 부산역에서 전철을 타기 위해서는 도로까지 나가서 입구로 내려가야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무궁화 호에 오른다.
서울까지는 약 5시간 정도...
좌석선정의 승리로 오른쪽 맨 앞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나름 잦은 기차여행과 인생의 짬으로 무궁화호에서 가장 좋은 좌석은 맨 앞뒤좌석이다. 왜냐면 콘센트가 있어서 폰을 충전할 수 있으니까.
모든 차량의 맨 뒷자리에 콘센트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앞좌석은 반드시 있다.
게다가 좌측 좌석과는 달리 우측좌석에는 접이식 테이블도 갖춰져있더라.
퍽 흡족한 5시간의 이동이었다.
멀쩡한 정신으로의 5시간은 꽤나 길고 지루한 시간이다.
하지만 정신이 반정도 나가있던 나로서는 눈을 감고 뜨니 밀양, 그 다음이 대구, 그 다음이 대전이었나? 그리고 천안을 지나 평택 수원. 영등포였다.
몸을 피곤하게 하니 이런 면에서는 괜찮구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전기장판 위에 누웠다.
2020년의 4월 말. 거의 딱 1년이 되었구만.
차츰 따뜻해질 날씨지만 요새 날씨는 싸늘하더라.
전기장판에 몸을 지지고 있자니, 그런 천국이 없었다.
온 몸이 녹아내리듯 나른해져서 잠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