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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이민 과정/3. 외노자생활

[캐나다 외노자29] 11년만에 처칠에 왔다.

아스라이39 2022. 6. 1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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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살짝 늦게 도착했다.

톰슨에서부터 밤새 14시간을 달려 오전 9시 반. 처칠에 도착했다.

마지막에 떠나기 전, 스티브기 악수를 하고 뜨겁게 포옹해줬다.

헤어질 때 부끄러워하며 포옹을 마다하던 덕이 생각나더라.

근데 덕은 퇴직할 때 300불 챙겨줬는데... 아 그냥 그렇다구요 ㅎㅎㅎ.

여튼! 난 스티브 좋았다. 그래서 14개월을 사사큐에서 보낼 수 있었구.

헤어질 때 좋게 헤어져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스티브가 나중에 레터 필요하면 말하라고 보내준다고 한다.

근데 내가 다 작성하고 자기는 싸인만 해준다고 ㅋㅋㅋ 지난번 잡레터 만들었을 때처럼 ㅋㅋㅋㅋ

필요할 일이 있을진 모르겄다.

 

하아. 

뭐 이러저러 빡침이 있었지만, 사사큐에서 꽤 괜찮게 지냈던 것 같다.

진짜 폴리만 아니었다면 어휴.

계속 무료로 먹거리를 제공받은 것과, 쉬운 난이도의 일에 익숙해져버려서 어떻게 다음 일자리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었다.

 

도착하자마자 내가 일하게 될 시포트에서 사람이 나와 날 픽업해줬다.

시포트는 처칠의 일자리 중 가장 괜찮게 보고 있던 곳 중 한 곳이었다.

내가 처칠에 머물렀을 때 한국인 형이 여기서 근무하기 시작하여 결국 영주권을 따서 나갔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한국인이 들어와 일하고 나갔다.

오죽하면 여기 스태프 숙소에 햇반용 플라스틱 숟가락이랑 참깨라면 나무젓가락이 아직도 보이는지 싶다.

하지만 그런 영광도 과거의 일이다.

처칠 역시 코로나의 악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금은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여 제대로 된 사업을 못하는 관광지가 되어버렸다.

시포트만 하더라도 식당을 제대로 돌리지 못해 운영시간을 줄였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스태프 숙소가 정리되지 못해서 하루는 시포트에서 머물렀다.

뭐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여기서 묵어보나 싶어 나름 기분이 좋았다.

일단 내가 일할 곳이니만큼 방 상태부터 체크했는데, 뭐 사사큐보다야 빡세겠지만 일하기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하룻동안 처칠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과거의 향수에 잠겼고,

하나도 변한 것 같지 않던 이곳에서 하나 둘 변한 부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미세한 변화는 오히려 내 추억이 훼방되는 것 같아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많이 낡았더라.

시포트도 그렇고, 예전에 머무를 때 놀던 체육관 역시 확대 증축되어 학교가 들어서긴 했지만, 그래도 많이 낡았다.

2011년 당시 새건물이었던 툰드라 인 역시 많이 녹슬고 낡았다.

 

 

집시베이커리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여기에 오기 전에 구글에 검색해봐도 안뜨길래 뭔 일이지 싶었는데, 불나서 없어졌댄다.

그곳 주인 헬렌과 토니는 처칠을 떴다고 하더라.

집시베이커리는 여러 아는 사람들이 일했던 곳이고, 많은 외국인들이 영주권을 받고 나갔던 곳인지라,

주인의 악명과는 별개로 사라진 것에 대해 많이 서운했다.

 

 

박물관도 다시 찾았다.

여긴 뭐 다음에 포스팅하기로 하고.

 

 

처칠의 앞바다에는 지난날 보지 못했던 얼음조각들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그렇다.

여긴 춥다. 처칠이다. 아마 겨울때까지 춥다가, 10월이 지나갈 때에는 엄청나게 추워지는 처칠이다.

 

감개무량은 없다.

오히려 익숙함이 편안함을 준다.

지금은 이제 스태프 하우스로 옮겨 이거저거 생필품 및 식료품을 사고 잘 준비를 한다.

뭐 적응할 필요도 없이 그냥 늘 그래왔던 기분으로 이곳에 스며든 기분이다.

다만, 당시 어울리며 이 작은 동네를 여기저기 활보하던 예닐곱명의 한국인 파티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나 혼자만 덩그러니 머무르는게 좀 씁쓸할 뿐이다.

 

10시에는 사이렌이 울린다

예전에도 이랬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아 오랜만에 빡세게 일했더니 피곤하다.

잠이나 빨리 자서 근면성실한 내일을 기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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