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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작품리뷰

[명작애니] '비비 - 플로라이트 아이즈 송(2021)' 리뷰. 완벽했다.

아스라이39 2022. 10. 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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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아들이기에 과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

정주행을 마친 후 회상을 넘어 머릿속에서 계속 상상하는 작품이 있다.

제발 많은 사람들이 좀 봤으면 하는 나혼자 보기 아까운 작품이 있다.

그게 이번에 감상한 비비 - 플로라이트 아이즈 송 이었다.

 

 

유튜브 리뷰를 보고 댓글이 호평이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1화부터 예술 그 자체더라.

하나의 포스팅에 담아내기가 벅찰 수준이었다.

최근 시청한 애니중에 훌륭하게 만들어서 놀랐던 작품으로는 86와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있었는데, 이번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근래 나오는 작품들이야 이쁜 애들이 나와서 남주인공한테 오니짱 오니짱 거리면서 웃기고 자빠지는 애니밖에 없어 눈이 썪는 줄 알았다.

그래서 원령공주로 눈을 정화하고 다시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진짜.... TV 방영으로부터 1년 반이나 늦었지만, 이걸 놓치지 않고 봐서 다행이었다.

 

 

- AI의 인류몰살을 저지하기 위한 100년의 여정.

 

AI들의 공격을 받던 마츠모토박사는, AI가 인간을 공격하는 역사를 바꾸기 위해 100년전으로 대책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낸다.

후에 박사와 동명으로 불리우는 이 프로그램은 인류 최초의 자율 인간형 AI '디바'를 찾아가 그녀와 함께 역사를, 미래를 바꾸기 위한 대장정, 100년동안의 여정에 돌입한다.

.

 

- AI는 하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디바는 전투형 AI가 아니다.

노래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사명'으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사명은 모든 AI들에게 단 하나씩만을 부여하며, 이는 AI들에게 영혼과도 같은 귀중한 개념이다.

디바는 불현듯 자신에게 나타나 스스로를 100년 후의 AI라고 소개하며 궤변을 늘어놓는 마츠모토를 마뜩치 않아한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사명인 노래에 책임을 다하려하지만,

결국 자신의 사명인 '노래로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데에는 관중이 필요하므로, 인류몰살을 막기 위한 '싱귤러리티 계획'에 동참한다.

 

 

 

- 속도감있게 흘러가는 시간선.

 

 

비비 - 플로라이트 아이즈 송에서 다른 애니들과의 차별성을 보이는 것 중 하나는 큰 시간도약이다.

대략 두화를 기준으로 역사를 바꿀만한 사건 하나를 마무리하고 짧게는 5년, 길게는 40년이 지난 후 다음 싱귤러리티 계획에 돌입한다.

기다리는동안 마츠모토는 동면에 빠지게 되고, 적당한 때 갑자기 디바에게 나타나 함께 행동한다.

디바가 잠깐 생각하더니 1년이 흘러가있고, 절규하더니 다음회 도입부는 갑자기 40년 후.

신선했다.

 

오른쪽이 원래 역사. 역사 바꾸기 성공.

 

- 디바에서 비비로.

 

 

사건은 어느형태로라도 종결된다.

그 변화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채 이들의 여정은 계속되고 디바 역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성장해간다.

원래대로라면 눈부시게 빠른 AI발전의 결과로 애시당초 벌써부터 박물관에 처박혀있어야 할 초창기모델 디바가

몇십년이 흘렀음에도 활동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들이 바꾼 역사의 한 측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비극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디바 본인에게도, 무고한 이들에게도.

 

'비비'는 디바가 깨어나 맨 처음 작은 공연장에서 노래를 할 시절, 꼬마팬 모모코가 일컬어주던 애칭이었다.

그러다가 '우주호텔' 미션에서부터 디바는 비비라는 가명을 이용하여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후로 디바는 노래할 때에는 '디바'로서, 싱귤러리티 계획을 진행할 때에는 '비비'로서 활동하게 된다.

이중인격이나 그런건 아니었고, 단지 자신 스스로가 정체성을 그 둘로 나뉘어 활동할 뿐이었다.

마치 가명처럼 말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사명만을 받들던 AI가 자신의 의지로 정체성을 둘로 나눈 것은 유의미한 발전이었다.

 

 

후에 그녀는 모종의 사건으로부터 '디바'로서의 인격을 잃게 되고 온전히 '비비'로서 남게 된다.

물론 자신의 근본인 디바로서의 사명을 가슴에 품은채.

혼란을 막기 위해 본 포스팅에서는 주인공의 정체성이 비비만 남았음에도 계속 '디바'로 호칭한다.

 

 

- 노래를 빙자한 액션물.

 

 

제목이나 PV등을 보면 노래로서 뭔가를 하는 애니같아 보이지만, 비비 - 플로라이트 아이즈 송은 노래를 빙자한 액션물이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은 뚜드려 패고 침투하고 해야해서 사실상 노래로는 뭔가를 할 수 없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노래로서 세상을 바꾸는 꼴이 되었지만, 그 전까지 디바는 마츠모토에게서 전투 프로그램을 받아 적들과 대치한다.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예뻐짐

 

그렇다고 음향수준이 떨어지는건 절대 아니다.

노래는, 그러니까 '마음을 담아 노래하는 것'은 디바에게 있어서 스토리상 계속 되뇌이고 고민하는 대상이다.

작품적으로도 준수한 OST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끈다.

오프닝과 엔딩은 아예 디바나 다른 AI의 공연으로 이루어지는 에피소들도 더러 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그냥 막 찍어내지 않았던 티가 난다.

 

 

- 한장면 한장면이 일러스트.

 

 

매일같이 똑같은 애니만 찍어내는 현대 애니시장에 비비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을 들여 만들어졌다.

 

 

영상 역시 마찬가진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땀한땀 모든 장면이 일러스트다.

보다가 정지시키면 일러스트가 된다.

그래서 썸네일 고르기도 힘들었다.

지금 이 썸네일이 최선은 아니었지만, 감상하면서 이걸로 썸네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로 정했다.

 

- AI는 인류와 동등한가.

 

연출이 아니더라도 내용면에서도 생각할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AI는 발전하여 결국 인류와 동등해지는가.

 

 

이는 수많은 AI작품들 중에서 나타나는 의문이 아닐까싶다.

스티븐 스틸버그의 AI만 하더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인간을 흉내냈던 데이빗이 있었고,

마이트가인 32화에서는 인조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유리우스. 나도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계에 관해서 좀 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기계가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게 될 정도면 그건 이제 사람이랑 별반 다르지 않아."

- 마이트가인 32화 中 -

 

본작에서는 AI와 인간과의 사랑이나 우울증, 가스라이팅, 더 나아가 AI의 자살과 베르테르 증후군까지 다루며 AI가 겪는 인간의 딜레마를 나타낸다.

프로그램으로 가동되는 그들에게 있어서 자의적으로 마음이 생겨난다는게 가능한 것인가.

AI의 자의적인 욕구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인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가 하는 물음은,

첫 에피소드에서부터 디바의 파트너 AI였던 '나비'가 디바에게 던졌던 물음이었으며,

디바의 개발자가 디바에게 사명을 부여하며 던졌던 AI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도 같았다.

 

 

 

- 그냥 단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래하고 싶었을 뿐인데.

 

 

디바는 마음을 담는다는 것. 인간성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던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디바는 처음부터 매우 인간적이다.

본연의 호기심에 대한 의문을 계속 이어나가고 끝내 답을 찾아내는 면에서도 그렇다.

 

마지막 순간에 노래르르 부르면서도 디바는 자신이 초반에 노래부르던 작은 공연장을 회상한다.

객석을 가득 매우고 자신의 무대에 웃음을 지으며 행복해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움이다.

 

 

 

마츠모토 박사도 디바에게 짐을 지게 하는 것에 대해 계속 미안해했고,

디바조차도 처음에는 이 장대한 계획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냥 소소하게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싶던, 행복을 찾고 싶던 디바에게 인류의 존속이라는 대의는 버거웠을 것이다.

 

 

 

- 디바는 고뇌하고 사유한다.

 

제목의 '플로라이트 (형석)'은 카메라 렌즈를 만드는데 사용되어지는 약하디 약한 광물이다.

마음을 담는 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디바는 100년의 역사동안 숱한 장면들을 눈 속의 카메라렌즈로 확인하고 관찰하며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그리고 결국 마음을 담아 노래하게 된다.

...마음을 담는다는게 뭔지 극중에서는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답을 말해줄 것처럼 하면서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버리던데,

디바가 어떤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어 마지막에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는지,

디바가 정의내린 '마음을 담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은 있었다.

마지막부분에서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보아 잠들어있던 디바가 깨어난 것 같기도 하구.

 

- 혼자 보기 아까웠던 작품.

 

100년이다.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디바는 수많은 만남과 좌절을 겪고

또한 수많은 이들의 탄색과 죽음을 목도한다.

시간이 흘러도 늙지 않는 그녀의 젊음이 부럽기도 하고,

원치않던 죽음에 슬퍼하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만큼 몰입하며 감상할 수 있었고,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나중에 몇번 더 볼 것 같은 작품이었다.

 

마지막에는 좀 급하게 끝맺는 감도 있었다.

그러니까 제발 극장판이라도 나와서 좀 더 구체적이고 나은 결말을 보여주면 좋겠다. 후일담이라던가.

 

디바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의 제목은 본작의 제목과도 같은

'Florite eye's song'.

프롤라이트 아이즈 송과 함께하는 대단원은 감동 그 자체였다.

가슴이 벅차오르더라.

 

그냥 '재밌더라'가 아니다.

감동도 있었고 여운도 남았으며 작품성은 말할 것도 없다.

혼자보기 아까운 작품. 비비 플로레이트 아이즈 송이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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