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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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까지의 인생정리

[인생정리5][유럽2차여행] 졸업. 그리고 입사 전 2013 북유럽여행.

아스라이39 2021. 3.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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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의 캐나다. 그리고 유럽 겨울여행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비보가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2012년. 27살. 학교에서의 마지막 학년을 마쳤다.

그리고 취직에 실패했다.

거짓말처럼... 나에게 벌어지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던 '서류에서 전부 다~~~ 탈락'이 나에게 일어났다.

남들처럼 50군데 100군데를 쓰진 않았지만, 20군데정도에 지원했던 것 같다.

그런 처참한 패배는 없었다.

단 한번의 면접도 없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대학교 수료. 그러니까 졸업유예라 불리우는 시간끌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생활을 질질 끌기 싫었고, 무엇보다도 졸업유예가 졸업보다 취직에 효과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생각은 적중했다.

수료든 졸업이든 이것은 내 취직전선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었다.

 

나의 취직기에 큰 전환점이 되어준 것은 학교 도서관에서 주최된 자소서 특강이었다.

고작 이틀동안 다 합쳐도 3시간이 안되는 강의를 들었었는데, 이 강의는 내 자소서의 개요를 짜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나의 취업전선에 명백히 유효했다.

 

2013년 3월즈음부터 시작된 하반기 공채.

나는 유수한 기업들을 지원했고, 수많은 서류전형에서 합격을 거두었다.

 

그리고 결국 최종합격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2013년 여름, 

'취직을 하고나면 일에만 매진해야 하므로 더이상 여행은 할 수 없겠지'라는 미래예측 0%에 가까운 안일하고 낙관적인, 지금 생각해보면 추하기까지 한 생각에 유럽여행을 갔다온다.

 

이번에는 동유럽 및 발트국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고작 17일 남짓의 시간에 돈 500만원이나 깨진... 더군다나 그 중 100만원은 안써도 될 돈이었던 내 인생 사치의 절정에 가까웠던 유럽여행을 다녀온다.

 

함부르크 - 코펜하겐 - 오슬로 - 베르겐 - 스톡홀름 - 로바니에미 - 헬싱키 - 상트페테르부르크 - 탈린 - 리가

 

루트는 이렇다.

지난번 여행에서 이어나간다는 생각으로, 최고로 멀리까지 갔던 함부르크를 기점으로 삼았다.

발트해의 북유럽과 독일을 잇는 페마른벨트 해협을 건넜다.

노르웨이에서는 산간열차도 타고 피오르드를 건너며 대자연을 만끽했고,

스톡홀름은 환상 그 자체였다.

핀란드의 백야, 종단열차, 그리고 발트해를 건너 미지의 세계 러시아 땅을 밟았고,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발트국가에도 발을 디뎠다.

 

이렇게 보니 아주 보람차게 다녀왔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북유럽의 수많은 사진들이 사진이동을 하는 중 날아가서 몇몇 순간들은 기억에만 의존해야한다는 것이다.

내 사진 ㅠㅠ

역시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


 

 

나는 내 여행의 모든 기착지를 연결하고 싶다.

그래서 2013년 유럽 2차원정의 시작점은 2012년 1월에 가장 마지막에 방문한 도시였던 함부르크에서 시작했다.

 


Ch1. 바다를 건너 코펜하겐으로.

 

 

수화물 분실로 악명이 높던 아에로 플로트. 러시아항공을 타고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별일 없이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함부르크에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광장에서 축제같은걸 했는데, 광대분장을 한 독일인 아저씨가 나한테 어정쩡한 무술자세를 취하며 장난을 걸더라.

그래서 나도 응수해서 태권도 자세를 취했더니 주위에서 웃고 떠들고 난리났었다. 그 아저씨는 나한테 포옹도 해주고 ㅋㅋㅋㅋㅋ

이런게 여행이지. 난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그 사회를 겪어보고 싶기에 여행, 워홀을 하는 것 같다.

 

 

함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코펜하겐으로 넘어갔다.

 

독특했던건, 페마른벨트 해협을 건너 덴마크로 향할 때 기차가 배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충격과 공포였네.

선박의 내부에도 철로가 구비되어있다니...

 

흐렸던 독일의 날씨는 덴마크에 도달하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엄청 좋아졌다.

사실, 여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르크 날씨가 구리구리해서 아쉬움이 상당했었는데...

코펜하겐에서의 날씨는 그야말로 푸르름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밖에 코펜하겐에서는 별 일 없었다.

 

교외로 나가 무슨 성도 보고 그랬는데, 흠... 딱히 인상깊지 않아 기억하진 않고 있다.

관광지에 갔다는 것보다는 덴마크의 열차를 타봤다는 것에 의미가 오히려 더 크다.

 

음... 그래. 그리고 코펜하겐에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더라.

그외에는 뭐..... 걍 유럽이었다.

 

 


 

Ch2. 오슬로. 아직까지는 그냥저냥한 북유럽.

 

 

 

코펜하겐과 마찬가지로 오슬로에서의 날씨도 굉장했다.

특히 숙소로 잡은 HI호스텔이 푸른 잔디의 언덕에 있어 뷰가 굉장했다.

그림같은 숙소였는데 살인적인 물가의 오슬로에서 가격이 저렴했으니 말 다했지.

...... 대학교 근처 카페테리아에 갔는데 미트볼 3개담긴 접시가 2만원이더라. 실화다 이거.

 

앞으로도 쭉 그럴테지만, 이번 유럽여행은 지난번과는 달리 이색적인 유럽여행이었다.

특히 문자나 화폐가 그러했다.

분명 알파벳이 맞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문자가 섞여있었다.

특히 역 이름을 볼 때 항상 위화감을 느꼈다.

 

오슬로에서도 많이 돌아다니긴 했는데,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모던하게 생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가 주요 볼거리같았는데 딱히 별거 없었다.

지붕위를 걸어다녔던게 그나마 재미있었나?

 

오슬로에는 독특한 대중교통이 있다.

항만과 이곳저곳을 연결해주는 페리가 그것인데, 그냥 배타고 구경하며 노닐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걍 많이 심심했다. 코펜하겐보다도 더.

코펜하겐 시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라도 있었는데, 오슬로에서는..

 

그래. 오슬로의 엄청나게 의외였던 것은 노숙자가 많고 길이 지저분했다는 것이었다.

이 부국에 노숙자가 많다니. 타국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인가? 하지만 겨울이 되면 혹독하게 추울텐데 어째서 이 추운 나라에...

시내 곳곳에는 그래피티로 낙서된 벽도 많았고...

우리가 아는 그 부유한 북유럽의 시티. 그 중에서도 노르웨이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괴리감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녀온게 벌써 8년전의 일이니,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겠지.

 

이번 여정 중 심심했던 시티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차후 나올 '헬싱키'였다.

하지만 헬싱키는 심심하다기보다는 고요했다? 힐링이 됐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은데... 일단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오슬로를 떠나 베르겐을 향할 때, 산악열차와 페리를 탔다.

페리를 타며 생애 첫 피오르드 해안을 지나갔는데, 날씨가 흐려서 제대로 된 구경을 하지 못했다.

이후에 뉴질랜드에서 피오르드 해안을 여행하고 감탄하며, 이 날 제대로 구경을 못한 것을 더욱 아쉬워했다.

 


 

Ch3. 제대로 된 여행 시작. 아름다운 베르겐.

 

 

베르겐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다가 오슬로보다는 저렴한 물가, 즐거워하는 시민들, 그리고 관광객들.

훌륭한 인프라. 그리고 아기자기 알록달록한 해안가의 건물들, 호수공원....

아,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는 전망대도 있었구나.

 

전망대에 올라 베르겐을 보니 날씨가 안좋아서 온통 안개밖에 안보였다.

그래서 그 날 찍은 사진이 다 날라갔는데도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뭐... 쓸거리는 별로 없지만 여기서 퍽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 스톡홀름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

캔슬됐다 ㅋㅋㅋㅋㅋㅋ 

아직까지는 내 인생 유일한 캔슬이다.

덕분에 스톡홀름 일정이 하루 줄었다 하하하하하.

 

또한, 덕분에 그 물가비싼 노르웨이에서 호텔서비스를 받게 됐다.

저가항공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휴우....

항공사 서비스로 노르웨이 택시도 타보구 어휴.

오히려 더 레어한 경험을 해본 것 같아서 캔슬된 비행기에 고맙기까지 하더라.

 

다음날 아침 일찍, 스웨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애들 보는 맛에 돌아다닌 것 같다.

어쩜 저리도 귀엽던지...

 


 

Ch4. 북유럽여행의 하이라이트 스톡홀름.

 

 

시간은 없는데 북유럽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스톡홀름은 꼭 집어넣자.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다.

 

따스한 햇살 아래 해안가에서 맥주를 즐기는 분위기도 좋았고,

맛있는 음식도 좋았다.... 유럽 음식이 아닌 케밥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좁은 골목도 지나가봤고, 종탑에 올라 전망을 구경하기도 했다.

 

다 차치하고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고풍스럽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보기 좋은 건물들,

골목 곳곳의 테이블에서 식사와 차를 즐기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

오픈샌드위치...

 

더군다나 코펜하겐,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만난 동행 두명과 같이 다녀서 더 흥이 났던 것 같다.

그 동행들과는 나중에 탈린과 리가에서도 같이 여행하게 된다.

 

아아아아 스톡홀름. 너무 좋은데 어떻게 조리있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이미 다녀온지도 8년이 흘러서 표현이 정확하게 안된다 ㅠㅠㅠ 

 


 

 

 

스톡홀름에서의 대표적인 관광지, 감라스탄.

종탑에서 내려다보는 감라스탄의 아름다움은 구름낀 하늘조차도 어쩌지 못했다.

근데 하필 이 사진 찍을 때 날씨가 흐리냐....

 


 

Ch5. 예상보다 훨씬 좋았던 산타의 도시, 백야의 하늘아래 로바니에미.

 

 

로바니에미.

생소한 이름의 이 핀란드 도시는 라플란드 지방의 유명 관광지이다.

일단 산타마을로 유명하고, 높은 위도에 위치한 탓에 백야로도 유명하다.

나 역시 백야를 관찰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으며 무려...

무려 스톡홀름에서 100만원짜리 비행편을 타고 날아갔다.

..... 내 여행 역사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왜냐면 라플란드 지방에서 헬싱키를 오가는 야간열차는 고작 5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침대칸이....

 

지금 생각해도 빡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스톡홀름에서 로바니에미로 향하던 중 바라본 차창 밖의 풍경은 이국적이고 환상적이기 그지 없었으므로 마냥 후회만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정신승리가 아니라, 사진이 날아가서 그렇지, 호수가 널린 평야 위를 날아가는게 이렇게 멋진 일인지는 몰랐었다.

 

숙소는 꽤 근사한 곳으로 잡았었다.

숙박비 17만원짜리로 개인 건식 사우나를 갖춘 방갈로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과분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호텔 스위트룸같은 럭셔리함은 없었지만, 충분히 분에 넘치는 곳이었다.

공항에서 나와 일본인 커플을 픽업하러 나와서 숙소를 찾아가는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핀란드가 이리 햇살좋은 곳이었나.

게다가 위도는 66도를 가리키는 북극권의 이곳에서 녹음이 왜 이다지도 아름답게 우거져 있던지...

핀란드인들은 녹음을 누리기 위해 잔디 이곳저곳에서 수영복을 입고 들어누워 선탠을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로바니에미를 누렸다.

산타를 만나고.... 물론 상업적으로 일하는 산타 할아버지 직원분이었지만.

우리 집으로 크리스마스에 가는 엽서를 부쳤다.

불곰국과 인접한 국가답게 핀란드의 한 맥주는 겉에 곰이 그려져있었다.

극지방에 온 것을 기념하라고 만든 스탬프도 찍었다. 여기서 융프라우요흐에서 도장찍지 못한 한을 어느정도 풀 수 있었다

 

빼빼말라 높디 높게 오르는 사철나무들,

북유럽 특유의 목조교회를 본뜬 교회들,

북반구에서 가장 높은 위도에 위치한 맥도날드.

 

자정이 넘어가도록 해가지지 않아 아침까지 밝게 보낸 2013년 7월 6일의 밤.

 

지금 생각해도 환상적이기 그지없던 호사를 누렸던 것 같다.

 

반면, 다음 행선지로 잡은 헬싱키는 뭇 여행자들에게 심심한 도시로 평가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은 화려하게 즐기기보다는 힐링을 하며 쉬어가는 곳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로바니에미에서의 다음날, 방갈로에서 나와 로바니에미 시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다가 저녁열차를 타고 헬싱키로 향했다.

역시 하늘은.. 잠이 들 때까지 밝은 빛을 잃지 않았다.

 

 


 

 

 

핀란드를 종단하는 VR열차는 물가높은 북유럽에서 너무나도 저렴했다.

당시환률로 하룻밤 2인실 침대칸이 5만원정도. 게다가 운좋게도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혼자서 썼다.

 


 

Ch6. 듣던 것보다는 훨씬 근사하고 좋았던 헬싱키.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일단 헬싱키의 양대 성당이라고 일컫고 싶은 우스펜스키 성당과 루터란 대성당이 인상깊었다.

그리스정교의 성당을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교회투어라 일컬을 수 있는 지금까지의 유럽여행에서 그리스정교의 시설들은 나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충격이었다. 뭐... 나중에 구소련 국가들과 러시아를 여행하며 이 또한 지겹게 보며 매너리즘에 빠져들었지만, 이 때에는 매우 신선했지.

 

암석교회라는 독특한 곳도 가보고, 마켓에 가서 음식도 먹어보고. 대형 오르간 조형물도 보며 즐거운 여행을 했다.

도시 자체가 생긴게 꽤 마음에 들었었다.

 

헬싱키는.... 뭐... 암만 흥미로웠어도.... 역시나 듣던대로 힐링하는 곳이었다.

그동안의 여독을 풀며 평화로운 거주를 했고,

다음으로 낭에게 아직 미지의 땅이었던, 꼭 횡단하리라 하는 과제였던,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러시아땅으로 향했다.

 

지금이야 한국인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 비자가 필요하지 않지만, 소치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이었던 이 때에는 비자발급이 꽤 번거로운 미션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계획하던 중 '헬싱키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페리를 타고 가면 72시간동안의 비자를 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뭐 이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정보지만,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게다가 향후 탈린에서 같은 숙소에 묵던 미국친구에게 이 엄청난!! 정보를 넘겨줌으로써 그녀의 여행을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뿌듯함까지 겸비된 즐거운 러시아 여행~

 

헬싱키 일정을 마치고 많은 관광객들을 태운 대형 페리가 발트해를 건넜다.

뭐 지금까지 모든 유럽국가가 그랬지만, 대항해시대 게임에서나 돌아다니던 그 바다들을 직접 돌아다닌다는게 너무 낭만적이고 뿌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분주하게 하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드디어 러시아땅을 밟았다.

 

 


 

 

한가지 다행스러운건, 베르겐을 제외한 모든 일정에서 날씨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멋진 석양을 보며 상트로 향하는 배 위에서 맥주 한잔을 곁들였다.

 


Ch7. 부리나케 다녀와서 아쉬움이 많았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는 나에게 의미가 깊던 곳이었다.

1차 유럽여행에서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이유가 가장 크다.

당시 러시아만 횡단할 수 있었어도 지구를 한바퀴 돈다는 꿈을 이룰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러시아라는 가깝고도 먼 미지의 땅에 관심이 많았다.

 

헬싱키 페리티켓직원은 센스가 좋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선박 내에서 4인실을 썼었는데 어쩌다보니 한국인 3명이 몰려있었다. 그 중 한명은 국적이 미국이었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같은 민족끼리 뭉쳐넣을 수가 있던거지?

덕분에 하룻밤이 걸리는 바닷길에 이야기 상대가 생겼었다.

 

첫 러시아여행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은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72시간의 한시적용 비자를 받았지만, 나는 상트에 아침에 도착하여 저녁에 떠났다.

이후 일정의 예약문제때문이었다.

이래서 일정을 짜놓으면 불편해. 일정없이 발길닿는대로 막 돌아다녔던 2011년 겨울이 그립다.

 

아침에 선착장에서 시내로 가는 셔틀에 올랐다.

그리고 곧 상트의 유명한 피의 사원이나 성 이삭성당, 카잔성당, 에르미타쥬 미술관 등 화려한 관광지에 가봤다.

러시아의 급식형 식당에서 밥도 먹어봤다.

재밌는게, 미국이랑 그렇게 사이가 안좋으면서도 맥도날드와 버거킹은 있더라. 뭐 대도시로서 세계적인 체인이 없다면 그 또한 우습긴 하겠지만, 키릴어로 쓰여진 미국브랜드를 보니 재밌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보던 우리나라 기업의 로고 또한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다.

 

상트에서 잘한 일은 대중교통을 탄거였다.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이야 뭐 껌이지만~

버스에 올라 우리나라에서처럼 기사님한테 돈을 주려고 하니 날 쳐다보지도 않더라.

당황해하며 버스에 오르니, 그제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버스 안에 티켓판매 직원이 따로 있어서 그 사람에게 탑승 후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성당은 전부다 좋았다.

상트에서 가장 처음에 본 성 이삭성당에서는 성당 지붕에 올라 상트의 전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카잔성당은 생긴 것부터가 좋다. 넓직하게 양팔로 안고 있는 형상이다.

피의 사원이야 뭐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운 테트리트 사원이었고,

마지막으로 관광지에서 약간 떨어져있던 스몰늬 성당. 이 또한 너무 아름다웠다.

 

상트는 그 시가지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같았다.

그래서 여기서 오래 머물면서 이 낭만적인 도시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네바강에서 맥주도 한 캔 하며, 이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운 예카테리나의 도시를 향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굉장히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헬싱키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빵맛나는 음료 크바스.

나중에 러시아여행을 하며 주구장창 사먹어봤지만, 상트에서만큼 자극적이고 풍미있진 않았다.

 


 

Ch8. 생각보다 별로였던 탈린. 

 

 

발트 3국에서 부국은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 순이다.

그리고 여행하기 좋은 국가는 거꾸로 리투아니아 - 라트비아 - 에스토니아라는게 내 생각이다.

 

에스토니아의 탈린은 매우 큰 기대를 품고 왔던 나에게 좀 실망스러운 면이 많았다.

물론 사전에 알아놓은대로 아름다운 성곽의 도시였다.

중세시대를 연상케하는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고, 사람 구경하기도 좋은 곳이었다.

 

무엇이 부족했던걸까?

여긴 너무 관광화, 상업화되어 있었다.

현지 생활의 날것을 보고 싶던 나에게 이런 곳은 곤란하다. 마치 서울의 명동관광을 하는 외국인들처럼 '진짜'를 못보게 만든다.

 

다행스럽게도 일전에 베르겐에서 함께한 동행들과 다시 여기서 뭉쳐 와인을 한잔 했다.

숙소에서는 미국인 친구에게 사전 비자발급없이 상트에 가는 법을 가르쳐줬고, 그 친구는 일정에 없던 러시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크으 그래 이게 여행이지. 소통!

 

근데 음... 이게 기억나는 전부인 것 같다.

음....

다음에 다시 방문하면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동행 한명과 같이 우리는 나의 이번 여정의 마지막 지점. 라트비아 리가로 향했다.

 


 

 

탈린 버스터미널에서 리가로 가기 전에 먹었던 절인 정어리 오픈 샌드위치.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끔찍한 맛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진을 보니 다시 먹어보고 싶어졌다.

 


 

Ch9. 유종의 미가 빛났던 리가.

 

 

 

탈린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리가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도시라는 편향된 생각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상도 많이 받았다.

예쁜 공원과 도시 사이로 흐르는 천, 맛있는 음식들.

특히 '리가 더블 블랙'이라는 리큐어 커피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할 훌륭한 음료였다.

사진에는 아직 유로를 통용하지 않아 라트비아 화폐 '라트'로 가격이 표기되어있네. 2.5라트면 약 2유로정도 되는 돈이다.

 

무슨 대학교 건물에 올라가 옥상에서 리가 시내를 바라보았다.

크으 역시 여행중의 높은 곳은 진리라니까.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에서 마치 에반게리온 롱기누스의 창을 꽂아놓은 듯한 첨탑이 인상깊은 광경이었다.

저거 TV타원가 그랬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괴기스러운 브레멘 음악대 동상은 사람들이 복을 빌며 쓰다듬어서 코가 반들반들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다행히도 여정의 마지막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었다.

리가는 지금도 다시 가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 거주지와 관광지의 구별이 모호한 편안하고도 익사이팅한 도시였다.

그들의 건축물은 스톡홀름에서 보았던 북유럽의 그것과 닮았다.

그들의 문화는 러시아의 문화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같지는 않았다.

구소련 국가임에도 다행히 키릴문자보다는 알파벳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하나하나 기억하며 이렇게 즐거운 것도 복이리라.

 

기념품으로 '발잠'이라는 지역 술을 사옴으로써 나의 짧디 짧았던 2차 유럽 여행이 끝이 났다.

 

 

이제는 사회의 역군으로 활약할 시간.

즐겁게 놀만큼 놀았으니,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귀환하였다.

...

글의 초반에 말했지만...

....

이것은 오만한 생각이었고 난 그리 성공적인 회사생활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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