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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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까지의 인생정리

[인생정리4][유럽1차여행3] 호기롭게 유럽대륙을 횡당하다가 결국 베를린에서 파산.

아스라이39 2021. 3. 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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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 인터라켄 - 프랑크푸르트 - 하이델베르크 -  뮌헨 -  퓌센 -  빈 -  프라하 -  베를린 - 함부르크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가는 길은 험난 그 자체였다.

결론적으로 무사히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에 파리로 넘어가긴 했는데,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다보니 예약할 수 있는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떠나는 날, 우리는 오후에 티케팅을 하기 위해 역에 들렀는데 역시나..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차편은 티켓이 동이 난 상태였다.

여러 사람들이 따뜻한 바르셀로나보다는 춥디 추운 파리에서 낭만적인 성탄절을 보내고 싶었나보다.

 

일단 우리는 역무원의 조언에 따라 일단 세르베르cerbere로 움직이기로 했다.

세르베르는 지중해와 접해있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지역이었다. 아마도 역무원은 국경으로 가보면 파리로 가는 기차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세르베르에서도 파리로 가는 기차는 없었다.

이미 날은 캄캄해졌고 시간은 계속 늦어지고 있었다.

 

여기서도 역시 역무원의 조언에 따라 움직였다.

정확히 나르본Narbonne이었는지 툴루즈Toulouse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곳으로 가서 파리로 가는 열차를 모색했다.

둘 다 당시의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지명이었다.

다행히도 여기서는 파리로 가는 열차가 있었다.

시간은 거의 새벽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늘 밤의 막차였다.

 

짧지만 새로운 만남도 있었다.

혼자 유럽을 여행하는 여자 여행객을 만나 담소를 나누다가 그분은 스위스로 넘어갔고 우리는 시간이 되어 열차에 올랐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열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두자리에 우리가 앉게 되었다.

열차 통로에는 입석으로 가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고, 우리는 피곤에 지쳐 눈을 감고 그들을 외면했다.

 

생각해보면 바르셀로나-파리 구간의 이동은 몸고생 마음고생도 엄청났지만, 돌이켜보면 1차 유럽여행의 쏠쏠한 에피소드였다.

 

잠이 스르르 왔고, 아직 이른 아침 우리는 낭만의 그 도시, 그리고 프로테스트의 성지. 미식과 예술의 집합체!

파리에 도착했다.

 


 

Ch1. 기대에 미치지 않았던 파리에서의 크리스마스.

 

 

이런 말하기 아쉽지만, 결과적으로 파리는 기대에 그다지 미치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곳 역시 그저 다른 유럽의 대도시와 비슷했다.

 

파리일정은 공을 좀 들였었다.

짧은 일정의 점철이었던 유럽1차원정에서 파리에서는 무려 4일이나 배정되어 있었다.

그만큼 파리에 대한 기대는 컸다.

 

하지만, 이곳에서 역시 예약따위는 준비되지 않았었다.

우리는 이른 아침 노드Nord 역에서 내려 사전에 알아놓은 한인민박으로 무작정 갔다.

예약이 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하지도 않은 것 같다. 아니, 생각을 못한 것 같다.

파리까지 오면서 그만큼 고생했는데도 심신이 지쳐있던 나로서는 예약이 찼으리라는 생각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주 다행히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남자 두명이 체크아웃을 한 것 같다.

한인민박에서는 예약따윈 없이 무작정 온 우리를 보고 굉장히 당황하며 맞아주었다.

때마침 자리가 났다고.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하면서...

 

 

여기서 잠깐 적는 파리 한인민박의 장점!

 

한인민박은 각 국가별 도시별로 그 위상이 남다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전역이나 프라하 파리 등은 2011년 당시 한인민박의 위상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성비도 좋고 서비스도 좋고 만족스럽다고..

반면, 런던의 한인민박은 악명이 높고, 스페인이나 리스본같은 경우에는 굳이 한인민박에 묵을 필요가 없다. 현지 숙소가 훨씬 가성비도 좋고 서비스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 한인민박에 묵었기 때문에 캄프 누에서의 축구경기를 관람했으니, 음... 의사소통이 원활한 한인민박의 메리트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튼 우리가 파리에서 묵었던 숙소의 장점으로는

  1. 3식제공. 보통 많아야 조식, 석식을 제공해주던 뭇 한인민박과는 달리, 점심도시락으로 김밥도 챙겨줬다. 돈없이 떠돌던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2. 티켓할인. 센느강에서 유람선을 탔는데 티켓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파리에서 티켓 서비스는 한인민박 사이에서 보편적인 특징인 것 같았다.
  3. 와인파티.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인지라 와인파티도 열었다. 투숙객들이 서로 친해져서 다음날 10명 남짓이 다같이 파리 시내를 활보했고, 에피소드도 몇개 있었지만.. 일단 여기까지.

첫쨋날.

피곤에 지쳐있었지만 무던한 마음으로 파리 시내를 활보했다.

첫날 오르셰박물관 로댕박물관 등을 돌아다녔는데, 오르셰박물관을 갔던게 신의 한수였다.

작품을 차치하고라도 맨 꼭대기층의 시계탑에서 찍는 사진은 그야말로 인생샷. 지금 봐도 벅찬 사진이다.

그렇다고 작품 역시 부족하지 않다.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는 여인들을 봤는데, 미술품에 대해 무지한 나로서도 굉장히 뿌듯한 일이었다.

마드리도 소피아 박물관에서의 '게르니카'다음으로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저녁에는 투숙객들이 모여 와인파티를 열었다.

같은 투숙객 형과 술을 누가 먼저 따라주네하며 실랑이를 하다가 잔을 깨기도 했는데.... 호스트에게 매우 죄송한 일이었다.

 

 

둘쨋날.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운지라 바깥으로 나갔다....

...어제 같이 술먹은 모두와 나갔다.

오전에는 숙취로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오후즈음 되니까 술이 깨며 비로소 정상컨디션을 갖출 수 있었다.

에피소드가 많았다.

그 유명한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파리 시내를 보기도 했고,

신개선문에서 개선문으로 걸어가며 포기하고 전철에 올랐다.

저녁에는 리제 거리를 활보하며... 더럽게 비싼 바게트 샌드위치도 사서... 같이 나눠먹었다 ㅋㅋㅋ 지지리 궁상도 그런 궁상이 없었지.

밤에는 소요궁에서 에펠탑을 보며 화려한 라이트 쇼를 보았다.

나는 별개로 바스티유 감옥이 있었던 바스티유 광장에 들렀다가 숙소로 귀환했다.

아무래도 사회학도다보니 책으로만 읽던 프랑스혁명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지만... 그곳은 그저 자동차들이 굴러다니는 원형 로터리에 지나지 않았었다.

 

여럿이 몰려다니다보니 특이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전철에서 동행 한명이 소매치기를 당했다.

용의자는 유력했고, 나와 그 와인잔 에피소드의 형님이 같이 전철이 떠나기 직전에 가까스로 내려 그 소매치기에게 항의했다.

다행히 지갑을 돌려받을 수 있었고 다음 열차를 타니 다음 역에서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가 열차에서 합류했다.

음..... 역시나... 우리는 이방인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술하게 하고 다니면 타겟팅이 되기 쉽다. 그 소매치기 당한분의 옷이 주머니가 많긴 했다.

아, 물론 범죄사건에서 가해자가 잘못한게 당연함.

 

셋쨋날.

파리에서의 마지막날.

그 와인형님과 친구랑 셋이서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대망의 루브르.....

음...

그곳의 공기는 그 어떤 공기보다도 무거웠던 것 같다.

가만히만 있어도 그 공기에 눌려 가슴이 답답해졌으므로...

고대하던 모나리자, 이집트에서 약탈했을 것 같은 유적들, 모아이석상, 그리스 로마신화의 석상들....

매력적인 볼거리가 많았지만, 그래도 오르셰박물관이 더 좋았다.

 

우리는 같이 다니지 말고 효율적으로 각자 흩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 형님을 보내주기로. 그 형은 그날 저녁 음... 어딘진 기억이 안나지만, 파리를 떠났다.

소중한 인연이었지만, 지금은 사진 한장도 없다.

...

일전에 사진을 복사하다 대부분의 사진이 다 날라가서 ㅠㅠㅠㅠ

 

형님을 보내드리고 우리는 그 유명한 '몽쥬약국'에 가서 기념품을 공수했다.

대표적으로 '유리아쥬' 립밤을 샀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외국인 표기가 영어-한국어-중국어 순으로 되어 있었다.

그만큼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인 거겠지.

 

저녁에는 센강 페리를 타며 파리 밤하늘을 즐겼다.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과 아직 불타지 않았던 파리 노틀담의 성당.

그리고 블랑 1664.

근사한 저녁을 보내고 내일을 기약했다.

 

뒤늦은 생각으로는 베르사유의 궁전과 몽생미셸에 가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베르사유 궁전보다는 몽생미셸에 가보지 못했던게 계속 못내 아쉽더라.

하지만 뭐... 다음을 위해 남겨놓았다고 정신승리하자!

 

다음 행선지는... 스위스다!

 

 


 

 

해당국가의 고속철을 탄다는 것은 의외로 뿌듯한 일이다.

우리나라 KTX도 그렇지만, 스페인 렌페 등 그 나라의 기술력의 집합체를 겪는 것 같아 설레는 일이다.

우리는 떼제베 TGV를 타고 파리에서 스위스로 넘어갔다.

중간에 잠시 정차한 베른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스위스만 몇주 일정을 잡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차창밖 풍경이었다.

주전부리로는 파리에서 묵었던 숙소 뒤편의 빵집에서 산 빵 몇개가 손에 들려있었다.

그 동네빵집의 빵 몇쪼가리는 파리 그 어디에서 먹은 빵보다도 맛있는 파리 본연의 음식이었다.

 


 

Ch2.  스위스에서 느끼는 알프스의 지붕. 융프라우요흐.

 

 

 

스위스 계획은 완전 잘못 세웠다!!!

스위스에서 고작 인터라켄만 2박3일 머물렀지만, 너무 아쉬운 3일을 보냈다.

일단 사전에 알아놓은 한인민박이 예약 풀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물론 사전예약따윈 하지 않고 무작정 가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우연히도 중간에 만난 한인민박의 호스트에게서 예약이 풀이라고 숙박을 못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물론 차선책으로 찾은 호스텔이 만족스러웠고, 그곳에서도 괜찮은 만남이 있었지만, 시작부터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알프스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융프라우요흐였다.

인터라켄 Ost역에서 출발하여 기차를 두번 갈아타야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데, 세번째 기차는 체인으로 끌고 올라가지는 산악열차였다.

아쉬운 것은 올라가는 그 길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는 것이었다.

굳이 인터라켄에서 이틀 머물 필요 없이 그린델발트같은 중간지점에서 1박을 했어야 했다!

겨울 설국이었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여름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인터라켄은 융프라우요흐의 베이스캠프 개념일 뿐,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곳곳에 아름다운 스위스의 산간마을들이 즐비하다.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정상에서 보는 스위스 아랫동네들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_^

우리는 이곳에 오면 꼭 누려야 한다는 뻔한 클리셰를 실천하기로 했다.

알프스 정상에서 신라면 먹기 ㅋㅋㅋㅋㅋㅋㅋ 유레일 패스에 서비스 쿠폰으로 있던거였다.

얼음궁전에도 가보고, 뭐, 놀라울만치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그 기회를 100%에 가깝게  채우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다.

 

아.

융프라우요흐에서 여권에 찍을 스탬프도 있으니 절대 놓치지 말자.

...

난 몰라서 못찍었다.

이래저래 아쉬운 인터라켄에서의 일정이었다.

하루만 일찍 갔다면... 맑은 하늘의 융프라우요흐 정상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 하루차이로 날씨가 갈려서 흐린 날씨의 관광을 했다는게 아쉬웠다.

 

 


 

Ch3. 독일 입성.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반나절.

 

 

차붐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왔다!

별거... 없었다.

여기서 1박을 할까 했지만 너무 별거없는 그저 '도시'라서 반나절만 머물다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물론 광장은 좋았다. 독일스럽다기보다는 유럽스러운 건물들이 높게 우뚝 솟아있던 광장.

...별 에피소드는 없었다.

하지만 이 곳은 6년 후 다시 찾게 된다.

아일랜드 워홀을 위해 위해 프랑크프루트에 잠시 머무르게 되는데, 역시나... 심심한 동네인건 마찬가지였다.

 

여튼. 근처에 재래시장같은 마켓이 있어서 가봤다.

한글로 삼겹살, 로스구이 등이 쓰여있는게 이색적이었다.

그래..... 진짜 감회가 남달랐던게.... 밴쿠버생활 이래로 이렇게 대놓고 쓰여진 한글을 처음보는거였다. 거의 10개월만에 보는 노골적인 한글이었다 ㅎㅎㅎㅎ.

마켓에서 애플바인Apple wine도 먹어봤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마인강을 따라 걷다가 그냥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마인강에서 나오자마자 웬 서양인들이 우리를 붙잡고 묻는다.

마인강이 어느쪽이냐고..

너네... 현지인처럼 생겼으면서 우리한테 그런거 묻지마... 라는 생각은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친절하게 강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왔으니 당연히 프랑크 소시지지!

 

 


 

Ch4. 드디어 본격적 동유럽 여행 시작. 교육의 도시 하이델 베르크!

 

 

 

프랑크푸르트는 내가 기대했던 독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나의 독일여행, 동유럽 여행은 하이델베르크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다.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길은 독일의 국철 S반을 이용했다.

독일부터 구소련국가들에서는 유레일로 무료 국철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그제서야 패스를 끊은 보람이 생겨났다.

그 이전에는 별로... 할인도 조금만 해주고.... 섭섭했다.

 

하이델베르크는 날씨가 구리구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꿈꾸던 유럽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구시가지와 아기자기한 건물들, 예쁜 거리, 유럽 음식 등등.

너무 만족스러워서... 귀국전에 여기 한번 더 온다......;;;; 왕복 8시간을 할애해서 여길 또 온다....;;;

 

'세계에서 가장 도수가 높은 맥주'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Vette77에서 도수 10도가 넘는 맥주를 마셔봤다.

처음으로 먹는 학센. 환상 그 자체였다.

둘 다 가격이 좀 아쉽긴 했지만... 이미 러시아 횡단을 포기한지라 놓칠 수 없는 소확행의 사치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오크통인가? 그런걸 모셔둔 하이델베르크성 역시 방문했다.

여기저기 무너져내려서 생각보다는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뭐.... 음.. 아니다. 실망스러웠다.

다만, 성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가 좀 새로운 경험이긴 했다.

이후로 베르겐, 웰링턴, 오데사 등등 푸니쿨라를 많이 타게 되지만, 여기는 내가 처음으로 타본 푸니쿨라였다.

푸니쿨라는 언덕을 오르는 기차같이 생긴 운송수단이다.

 

성에서 마을로 내려갈 때는 걸어서 내려갔는데, 차들이 벤츠, 폭스바겐이 즐비했다.

여기선 국산차겠지만... 우리에게는 눈위 휘둥그레지는 진풍경이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숙소를 찾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호스텔이었는데, 밤중에 도착했던지라 그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며 못들어간 거였다. 어찌나 어이없던지 ㅋㅋㅋㅋ

그곳은... 굉장히 큰 건물이었는데 호스텔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하에는 마트가 있었고... 퍽 만족스러운 숙박이었다.

 

저녁에는 프랑스 니스에서 유학하는 사람들과 교류했다.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아쉬운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뮌헨으로 떠났다.

 

 


 

 

숙소 지하에 대형마트가 있는건 행운이었다.

게다가 하이델베르크부터 가격이 파괴되어 우리는 나름 유복한 생활로 여정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 소시지와 각 종 지역맥주를 원없이 먹으며 독일을 누리고 다녔다.

 


 

Ch5. 딱히 기억에 남지 않았던 뮌헨

 

이 다음 일정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그런지 뮌헨에서는 딱히 기억에 남는게 없었다.

시청사는 이쁘게 사진이 찍힌 것 같고,

한시판매일까? 소세지가 들어간 맥도날드 버거는 흥미로웠다.

그리고 여기서 역시 맥주와 소시지를 먹으며 지냈다.

음...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프브로이 맥주집에 갔다.

긴 테이블에 서로 합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던데...

음...

음........

자리가 났음에도 그 자리 근처에 앉아있던 서양인들이 우리에게 자리를 안내준다.

지들도 뻘쭘한지 머뭇거리고 어색해하며 우리를 물리치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자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

재수없어서 그곳에서 나와 다른 맥주집에 갔다.

 

그 이외의 기억은 없다.

 

 


 

Ch6. 독일에서의 절정을 꽂은 퓌센.

 

 

뮌헨에서 지선열차를 타고 '퓌센'으로 향했다.

열차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스위스에서 보던 그 풍경을 무색하게 할만큼 아름다웠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마음이 들떴다.

 

퓌센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디즈니 로고 성그림의 모토가 됐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었다.

문명5를 할 때에도 굉장히 중요한 성이다.

 

성은 아쉽게도 부분적으로 공사중이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었다.

내부에도 들어가보고...

주위의 또다른 성인 호엔 슈방가우 성에도 들어갔었다.

 

여기서 한가지 음... 생각했던 점은..

다음 행선지가 오스트리아였는데, 지리적으로 5시방향으로 산을 넘어가면 인스부르크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도통 찾아봐도 교통편이 나오지 않더라.

분명 길은 이어져 있었는데....

흐음..

시간적 기회적 금전적으로 아쉬웠지만, 우리는 다시 뮌헨으로 와서 야간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갔다.

참으로 아쉬웠다.

나름 길을 개척하는 줄 알았건만...

 

아, 그리고!

퓌센에서 관광지로 가려면 슈방가우로 버스타고 가야하는데...

그 버스...

벤츠다.

고급진 독일의 국산 시내버스였다.

 

 


 

Ch7. 내가 말아먹은 오스트리아 빈 일정.

 

 

 

말아먹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즐겁게 돌아다녔다.

교통 유레일패스 무료에 물가도 저렴했으므로 만족스러운 일정을 보냈지만...

친구가 느릿느릿 움직여서 뮌헨-빈 열차를 놓쳤던바람에 성깔이 더러워져있었나보다. 친구랑 틱틱댔다.

 

그래도 뭔 종탑에 같이 올라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좋았다.

이 때 쯤 오니까... 이건 유럽여행이 아니라 교회, 종탑투어여 뭐여.

딱히 큰 감흥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저 '에이 세비야 대성당보다 못하네'로 모든 교회와 성당을 일축하며 다니고 있었다.

 

어짜피 무료 교통인거 우리는 아무 트램이나 타서 어디든 가보기로 했다.

중간에 내가 무서워서 내리자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차했고 다시 비엔나 시내로 돌아왔다.

차후 지도를 보니, 그 트램을 계속 탔으면 도나우강을 볼 수 있었다.

...

매우 후회하며 친구한테 미안했다. 친구는 계속 더 가보고 싶던 것 같았는데...

 

이때쯤부터 친구랑 따로 다니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여행성향이 안맞는 탓에 티격태격대고 있던 차에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

친구가 비엔나커피를 마시러 갈 때 따라갈껄..... 후회한다.

 

나는 그 때 자연사박물관에 갔다.

..

후회한다.

 

나의 후회를 아는지 모르는지 빈의 하늘은 맑았고, 저녁놀이 지는 보랏빛 하늘은 몽마르뜨 이상의 감격을 주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을 하며 빈에서의 일정을 보냈다.

이제는 정말.... 음... 그래... 여행이 아닌, 생활이 되어버렸다.

 

금전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여행을 끝낼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았다.

 

참 아쉬워... 빈에 가서 오페라 하나를 안보고 왔다니. 어휴.

 


 

 

비엔나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이제는 너무나 친숙한 개복치.

당시에는 이게 뭔 괴물딱진가 하며 사진을 찍었었다.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후, 호스트 조언에 따라 근교도시 체스키 크롬로프에 방문했다.

날씨....

할많하않.

 


Ch8. 나만 별로였던 프라하.

 

 

 

오랜만에 한인민박에서 묵었다. 파리 이후로 처음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프라하에서 별로였다.

프라하가 별로라는게 아니다.

여기서 역시 한인 여행객들과 무리를 지어 다녔는데... 그러다보니 휩쓸리며 돌아다니기만 한 것 같아 머릿속에 들어간게 없어서 별로였다.

진짜 걍 티비를 무음으로 해놓고 여행채널을 보는 그런 무미건조한 느낌이었다.

 

날씨도 무지 추워졌다. 사진을 보니.. 저렇게 입을 날씨가 절대 아니었지 어휴. 왜 저러고 다녔냐.

 

불만은 이쯤 해두고.

프라하 성은 아름다웠다. 특히 성에서 보는 프라하 시내가 좋았다.

역시 어딜 가든 높은데에 가야 만족감도 올라가는겨.

 

운좋게 성내 근위병 교체식? 행진?같은 것도 봤다. 하지만, 머릿속에 들어온게 없어 그게 뭔지 모른다 ㅠㅠ.

맛집으로 추천받은 치즈버거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으로는 체코 족발요리 꼴레뇨를 민박 투숙객들과 같이 먹으러 나갔다.

음...

 

나 이 때 아팠나? 왜 좋았던 기억이 없냐;;;


 

 

Ch9. 1차 유럽원정 마지막 도시. 통일의 그곳. 베를린.

 


 

 

베를린에서 일수로 6일을 있었다.

민박집 사장님도 이렇게 베를린이 오래 머물 곳은 아닌데...라 하며 우리가 두번째로 오래 머문 기록을 세웠다고 하는데 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ㅋㅋㅋㅋ

 

그래도 나름 뿌듯한 일정을 보냈다.

교외에도 들락날락거렸고,

동행과 친구랑 셋이서 베를린 기사식당으로 가서 학센, 아이스바인, 슈니첼을 하나씩 시켜 나눠먹기도 했다.

맥주까지 들어간 세트였는데, 접시당 10유로가 안됐었지 ㅎㅎㅎㅎ

그 유명한 티비타워, 베를린장벽을 봤고, 뭐 걍 돌아다니며 설렁설렁 다녔다.

 

무엇보다도!

베를린에서 귀국하는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신용카드가 없던 나로서는 비행기티켓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귀국행 티켓을 장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이상하게 카타르항공이 제일 저렴하게 나와서 뜻하지 않게 귀국시 호사를 누리게 됐는데... 

베를린 시내의 카타르항공 지점에 가서 티케팅을 하는 나름 신묘한 경험도 누렸다.

 

사실, 이때쯤 무료함이 극에 치달아서 여행다운(?)여행을 하고 있진 않았다.

이럴거면 차라리 한곳에서 진득하게 있다가 귀국할껄...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광범위하게 움직여서 그런걸까?

첫 유럽행이 심신을 지치게 한걸까?

 

이후에 나는 유럽에 두번을 더 가고, 동남아 여행을 하며, 뉴질랜드, 호주, 아일랜드 워홀을 했다.

하지만 이때만큼 음... 매너리즘에 빠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매너리즘이 아닌 정말 지쳐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차라리 동남아에서는 아파서 귀국을 했지, 이렇게 정신적으로 멍~해있지는 않았었다.

 

아래는 베를린을 거점으로 돌아다닌 함부르크와 드레스덴, 그리고 유럽을 떠나기 전 한번 더 방문한 하이델베르크 사진들.

 

 

 

함부르크 햄버거 체인점 짐블락 버거를 먹으며.

햄버거의 시작점이니 당연히 먹어야지~

함부르크 여행은 만족스럽게 누리지 못했으나, 이곳은 2년 후인 2013년 여름,다시 방문하게 된다.

 

 

사진을 복사하다 엄청 많이 날려먹었는데.... 드레스덴 역시 그렇다. 남아있는 사진이 없어서 눈물이 난다.

웅장하고 화려했던 드레스덴.

친구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아서 나 혼자 다녀왔다.

그리고 같은 칸에 탑승한 독일인 청년들로부터 혼자왔냐는 말에, 친구가 베를린에 있는데 안온다고 해서 혼자 방문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더니, 내 친구는 드레스덴에 오지 못한거 평생 후회할거라 자신하더라들.

그만큼 멋진 곳이었다.

 

 

베를린에서 기차로 4시간을 달려 두시간만 있다가 다시 4시간을 달려 돌아왔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던 맥주는 아니었지만, 우린 이거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2017년 여름, 나는 여기 다시 방문하게 된다.

가격은 여전히 과도했다.

 

 

유럽여행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서 2012년. 대학교 4학년생이 되었다.

이제 취업을 준비할 시기였다.

 

과거 싸이어리를 뒤져보니 내가 이 때 단호히 캐나다살이를 거부했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캐나다 영주권도 좋지만 난 한국에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할거라는 다짐.

그리고 캐나다 밴쿠버를 저주하는 내용들...

과거를 기록하는게 중요한 것이 이런 때 느껴진다.

기억은 왜곡되더라도 기록은 그렇지 않으며, 왜곡된 내 기억을 다시 올바르게 정정해준다.

 

여튼 싸이어리의 그 다짐은 말 그대로 이루어졌고, 취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불친절했으며, 난 그러한 세상을 맞닥뜨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4학년 생활이 번개같이 끝났다.

2012년 하반기 졸업학기에 모든 구직지원은 서류에서 떨어졌고, 나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이틀짜리의 무료강의를 통해 좀 더 새로워지고 보강되었다.

 

졸업후 시간은 반년을 뛰어넘어 2013년 여름으로 흐른다.

 

그리고 난 짧디 짧은 경력의 삼성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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