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헤르 - 론다 - 그라나다 - 바르셀로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로코 탕헤르에 발만 담그고 다시 이베리아반도로 돌아온 것이 좀 아쉽긴 하다.
모로코에는 카사블랑카, 사막횡단, 라바트 등 매력적인 곳도 많았고... 물론 의사소통은 극심히 힘들었겠지만.
그리고 좀 더 남서쪽으로 갔다면 윤식당2의 무대였던 카나리아제도에도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건 과거를 회상하며 이기적이고 생각하는 왜곡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 때 난 돈이 극심히 적었고 사막횡단은 커녕 어떡해서든 이동비를 아끼기 위해 분투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2011년 12월 중순.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했다.
Ch. 1 연금술사의 도시 모로코. 예상대로의 모습과 기대이상의 모습들.
처음 탕헤르에 도착하고 느낀 것은 불쾌감이었다.
배에서 내리자 수많은 삐끼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나는 좀 예민해져있었는지 화를 내며 대응했고, 그 사람들은 나에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화를 내었다.
숙소에 도달하기도 전에 해가 떨어져서 예민했을까.
사전에 알아둔 숙소를 찾는데 아까 실랑이했던 무리중 한명이 내 뒤를 밟고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
뭐 도와줄거 없어?
이 말은 삐끼의 수작이 아닌 순수한 배려의 말이었고, 나는 금새 반성하며 마음이 풀어졌다.
하지만 '날 그냥 놔둬'라고 대응해버렸고 그 사람은 알겠다며 미안한 제스처를 취하고 돌아가버렸다.
엄청 미안했다. 그 사람은 순수 호의같아 보였는데... 아직까지도 그 때를 생각하니 미안함에 부끄러워진다.
혹시나 아프리카라서 편견을 가진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어쨌든 돌고 돌아 사전에 알아둔 숙소를 찾았다.
페리선착장과 가까이에 있었는데 단순히 길을 못찾았던거였다.
예상은 했지만 숙소는 매우 허름했고 뜨거운 물도 안나왔다.
그러면 어떠랴! 이 또한 낭만인것을.
넓직한게 좋기만 하구만! 근사한 숙소는 아니었지만, 고단했던 우리는 그곳에서 꿀잠을 자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부터 이 이색적인 곳의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우리가 탕헤르 별다방이라고 칭한 다방에 들어가 맛이 진한 민트티를 마시며 탕헤르 사람들과 축구경기를 봤다.
우리나라 선수 이정수가 뛰고 있었다.
시장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치즈같은 것도 사서 맛을 봤는데 많이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라서 다 버려버렸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우릴 뚫어지게 쳐다보는 고양이에게 먹이도 줬다.
식당에서 말이 안통해 잔돈이 얼만지 소통이 안되자, 영어를 할 줄 아는 옆테이블 현지인 형아가 통역도 해줬다.
빈대떡같은 것을 팔던 아저씨는 나를 힘겹게 맞이하다 음식을 다 태워버렸다.
어찌나 미안하고 귀여우시던지 ㅋㅋㅋㅋㅋ
과일노점 아저씨에게서는 생전 처음보는 희한한 과일을 샀다.
구매하자 아저씨께서 과일껍질을 벗겨주셨는데, 용과와 비슷한 맛이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노라니 자기도 보자는 제스처를 취하셔서 서로 같이 보며 즐거워 했다.
그리고 코카콜라 ㅋㅋㅋㅋ
정말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코카콜라라는 글자는 내가 진짜 낯선 곳에 오긴 왔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했다.
낯선 언어를 보면 물론 의사소통 불편의 공포감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생전 몰랐던 새로운 문화와 세계를 알아간다는 기대감에 들뜨기도 한다.
탕헤르를 떠날 때에는 입국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나옸다.
떠나는 당일, 숙소앞 식당에서 당도 200% 무지막지하게 단 오렌지쥬스를 마셨고, 언어가 통했으면 이들과 좀 더 친해질 수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되었든 우리들의 외모는 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이색적이고 관심이 갔을테니까.
탕헤르는 예상대로 열악한 환경에 지저분한 도시였다.
하지만 기대이상으로 흥미진진했고, 사람들의 친절함과 순박함을 보며 이런 맛으로 여행을 하는거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타리파에서 건너왔지만, 우리가 돌아갈 곳은 그보다 약간 동쪽에 위치한 알헤시라스.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투우가 시작된 도시, 론다로 향했다.
유랑까페로부터 안달루시아를 오가는 열차가 매우 열악하다는 정보를 얻어 걱정이 많았었다.
하지만 우리가 승차한 열차는 최신식의 렌페였다.
역시 여행은... 예상을 빗겨나가는 맛이 쏠쏠하다.
Ch2. 여기에서 살고 싶어요. 론다.
여행을 하고 워홀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도시는 많았다.
그 중 첫번째는 캐나다 알버타 지방의 캔모어였다.
그리고 두번째로 나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킨 곳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론다였다.
론다는 투우의 고장이라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누에보다리라는 아름다운 다리가 매우 유명했다.
하지만 막상 방문해보니 이곳은 조용하고 한가하며..... 그리고 아주 매력적인 스페인의 작은 동네였다.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볼거리가 많은 것이 좋았다.
깨끗한 거리나 하얀 벽의 집들이 좋았다.
물가가 저렴한 것도 좋았고, 아.. 모르겠다.
무엇에 그리 홀렸는지 모르겠지만, 난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받았었다.
사전에 알아둔 누에보거리가 절경으로 보이는 숙소는 이미 예약이 차서 투숙할 수 없었다.
어짜피 겨울시즌인데다가 계획은 유동적이라는 판단에 숙소예약없이 움직였더니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차선책으로 들어간 아무 숙소는 만족스러운 가격에 조식포함, 넓은 공간, 푹신한 침대 등 스페인 여행 중 최고로 좋았던 숙소였다.
구글맵에 검색해보니, Hostel Virgen Del Rocio라고 나온다.
지금도 그 때와 같을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스페인 아니, 이번 여행 최고의 숙소였다.
Ch3. 알함브라 궁전의 그라나다.
그라나다 저체는 별로였다.
그냥 힙한 스페인 젊은이들이 신나게 노는 핫플레이스에 불과했는데, 그런거 볼꺼면 강남이나 홍대에 갔지 그라나다로 안와도 됐었다.
하지만 그라나다에는 매우 막강한 무기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알함브라 궁전. 관광객을 흡입하는 물먹는 하마였다.
알함브라 궁전 티케팅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다지 예약을 하며 여행하지 않던 우리로서는 매우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
거짓말같게도 당일 아침 줄도 서지 않고 너무나도 쉽게 티케팅을 할 수 있었다.
날씨마저 좋았던 하늘아래 알함브라 궁전은 수려함 그 자체였다.
무어인들의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아름다운 정원들.
그라나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경.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담백한의 절정을 봤다고 해야 하나?
수수한 아름다움의 끝이었다.
나와 친구가 걷던 중 저 앞에 한무리의 현지 유치원생들이 선생님 몇몇과 함께 알함브라 궁전을 견학하고 있었다.
우리와 마주치던 그 순간 그 아이들은 일제히 우리를 향해 외쳤다.
니하오~
그 해맑은 인사에 우리는 어쩔줄 몰라 민망해하며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 아이들은 도망치듯 떠나는 우리를 보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좀 더 어른스럽게 우리도 웃으며 니하오~ 해줄껄.
그라나다에서 볼만한게 알함브라 궁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 미구엘 전망대는 내가 여지껏 경험해본 최고의 전망대였으며, 훌륭한 일몰을 관람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로 넘어가며 야간열차를 이용했다.
4인 침대칸의 나름 고급진 열차였다.
신발을 벗고 침대에 오르자 다른 침대에 있던 두명의 스페인사람이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막는다. 그러며 우리에게 발을 씻고 오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민망해진 우리는 겸연쩍게 웃으며 얼른 열차 화장실로 가서 그 좁은 개수대에서 발을 씻었다.
티켓을 늦게 끊어서 그런지 우리는 둘 다 위층 침대를 썼다.
감자칩을 먹던 중 부주의하게 아래층에 앉아있던 스페인사람 머리 위로 과자를 흘려버렸다.
그 스페인 사람 ㅋㅋㅋ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보이던데, 막상 화는 내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쉬더라. 무지 미안했다.
그리고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유레일 패스를 이때 개통했다.
이때는 몰랐지만 유레일 패스는 독일권을 비롯한 동유럽에서 그 가치가 극대화되며, 다른 지역에서는 효용가치가 많이 떨어진다. 서유럽과 북유럽에서는 효율성이 극히 떨어진다.
Ch.4 대망의 바르셀로나. 그러나 너무나도 짧았던 일정.
소소한 우여곡절이 많았던 야행을 겪으며 다음날 아침, 워낙 유명한 도시, 대망의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우리는 바르셀로나 일정을 1박2일로 잡았다.
아니, '우리'라기 보다는 '내'가 그렇게 조율했다.
첫날 아침에 도착하여 둘쨋날 저녁에 출발하는 말도 안되는 일정.
그러나 다음 행선지인 파리에 대한 기대가 바르셀로나의 그것보다도 훨씬 높았고,
크리스마스마저 겹쳐버린 파리일정을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 지금 생각해보면 파리보다는 바르셀로나였지만 어쨌든.
아침에 미리 알아뒀던 한인민박으로 향했다.
1박을 한다고 하니까 돈을 올려받더라. 아마 청소비용때문에 그랬겠지. 그냥 그러려니 했다.
위치가 람블라 거리 한복판이었던지라 지리적으로 만족했고, 무엇보다도 그런걸로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공원, 카사밀라 등 가우디 양식위주로 돌아다녔다.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꽤나 만족스러웠다.
어느 도시든 그곳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또한 훌륭한 관광이라고 생각한다.
지하철역에서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우리 뒤로 익숙한 말을 하며 한 한국인 여성이 지나간다.
'옆에 소매치기 있어요~'
크으....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대의 센스와 배려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 소매치기는 너무나도 엉성하게 있었는데, 딱히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남자 둘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뭇 범죄자들에게 타겟팅이 되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다.
규모가 어마무지하게 크던데, 외부 전경이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해와서 그런지 그다지 큰 감동이 없었다.
내부의 모습은 내 기대와는 달리 알록달록하고 현대적이어서 거부감이 들었다.
종탑이었나? 여튼 성당 상층부를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내려온 후 그곳에서 벗어났다.
음... 하지만 지금 다시 가보면 느낌이 그때보다는 사뭇 다를 것 같다.
당시에는 왜 그리도 실망했는지 하하;;
반면, 구엘공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와는 달리 오히려 화려한 색감의 조형물들이 다채로워서 보기 좋았다.
구엘공원이 높은 지대에 있나? 멀리 보이는 바르셀로나의 도시전경이 보기 좋았다.
약간 이른 시간에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분께서 FC바르셀로나 경기에 대한 정보를 주신다.
오늘 저녁 국왕컵으로 3부리그 팀과 경기한다고 한다.
오!!!!!!!!
이 숙소에서 머물며 제일 좋았던 서비스였다.
우리는 단돈 15유로로 캄프 누 경기장에 가서 메시와 푸욜, 이니에스타 등의 세계적인 스타를 볼 수 있었다.
미쳤어... 단돈 2만원이라니...
리그경기라면 최소 20만원은 쏟아야했겠지.
람블라 거리의 식당에서 빠에야도 먹어봤는데 별로였다. 역시 관광지는... 아마 서울 명동에서 먹는 비빔밥의 느낌이었겠지.
바르셀로나에서의 이튿날이자 마지막날 낮에는 지중해를 보며 거리를 거닐었다.
어찌됐든 꽉찬 이틀을 보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많은 바르셀로나 여행이었다.
몬주익 언덕에 올라 성을 보고 싶었다.
그 푸니쿨라를 타며 언덕에 오르고 싶었는데...
구엘공원에 가며 저 멀리 산꼭대기에 보이던 교회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도 비용도 일정도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쉬운 마음을 안고 스페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바르셀로나를 나서며 스페인을 떠나는 과정도 순탄하진 못했다.
가난한 여행이란 이토록 힘든 것이지만,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기억속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들이 많아 후회는 일절 없다.
어쨌든 매우 흡족했던 이베리아반도 여행을 시작으로 내 첫 유럽여행이 시작되었다.
너무나도 생각보다 괜찮은 시작이어서 몸둘바를 몰랐었다.
게다가 12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는 이베리아반도를 따뜻하게 뎁혀주고 있었다. 마드리드만 빼고.
사실 내가 이번 여행의 주안점으로 두었던 국가는 스페인과 독일이었다.
포르투갈에서 리스본만 방문했던 것처럼 다른 국가들은 주요 도시만 방문하지, 구석구석 돌지는 않을 생각이었고 또한 이를 실천했다.
다만 스페인과 독일은 음.... 관심도 많았고, 뭔가 이끌렸다. 그래서 일정을 조밀하게 넣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때문에 스페인 여행이 꽤나 성공적이었던거겠지.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다른 나라들에서 많은 것을 놓치는 계기가 되었다.
...할 수 없지 뭐.
스페인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그 먼 옛날 갈리아라고 불르던 지역으로 넘어가 유럽여행을 계속했다.
다음 행선지는 예술가들의 도시,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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