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회사생활에 대해서는 쓸 말이 별로 없다.
또한 사회생활에 대해서 적자면... 머릿속에서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아서 힘들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이제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었다.
27년간의 인생은 이 때의 도약을 위한 준비동작이었으리라.
앞으로 꼬박꼬박 월급받으며 열심히 일에 매진하다가 인생을 살아가겠지. 그렇게 평범하게 살기를 생각했었다.
그리고 반년만에 퇴사했다.
Ch1. 합격.
졸업 후 도전한 13년도 상반기 공채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요령을 익힌 자기소개서는 승률이 압도적으로 올라갔다.
면접 또한 처음에는 버벅거리며 기회를 날리다가, '면접스터디'를 하면서 그나마 좀 나아졌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잘나가는 대기업에서 여러차례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압도적으로 기억나는 곳이 있다면 단연 CJ 푸드빌.
뭔... 스튜어디스 시험보러 온 줄 알았다.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와 외모들은 뭐 그리도 출중한지.
게다가 최근에 짐정리를 하면서 그 때 같이 CJ 스터디를 했던 사람들의 스펙을 봤었는데...
무슨 부모님들이 죄다 사장에 이사에 대표이사에... 진짜 부의 되물림이 실존하는건가 싶었다.
서류전형에 합격한 후 몇몇 면접스터디에 나갔다.
그리고 난 이 면접스터디에 들어갔던게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한다.
하나같이 멤버들이 정상적이었다.
특히 내가 결국 입사하게 되는 S기업의 지금은 사라진 E계열사 면접스터디는 가히 괜찮았었는데,
성격이 유순하면서도 규율에 엄격한 스터디장은 분위기를 조율하며 멤버들을 단단히 잡고 캐리해줬다.
결국 그친구랑 다른 세친구... 세상에 7명중 5명이 붙는 쾌거를 이뤘다. 그 중 한명은 신한은행도 붙어서 그리로 갔던걸로 기억한다.
면접을 무지 잘봤다.
게다가 학교동기가 나보다 반년 먼저 거기에 입사해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경험담이라던지 그런거.
나답지 않게 말도 유창하게 나왔고,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다 내뱉었던 것 같다.
나답지 않게 패기있게도 보였다.
나답지 않게 승리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합격했다.
학교 중도 앞에서 친구랑 같이 벤치에 앉아있다가 합격 메일을 확인. 소리소리 지르며 좋아했었다.
2013년 6월26일, 계열사 OT에 참가했다.
7월에는 동기 엠티도 갔다.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고 내 앞길에는 장밋빛 미래만이 있을 줄 알았다.
Ch2. 교육.
사실 교육이라 쓰고 엠티라고 읽는다....
자부심이 강한 기업인지라 어느정도 세뇌시키는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걍 또래의 사람들이 조를 이뤄 놀고 춤추고 생활했던 것 같다.
나름 인싸였는데, 흠.. 나에게는 역시 인싸의 길은 힘들고 부담스럽다. 맞지 않아. 빨리 캐나다에 가서 사람없는 데에서 살아야겠어.
친한 사람들도 많이 생겼었는데.... 뭐 이제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최근에 다시 네다섯명이 연락되었고 단톡방이 만들어졌는데... 나중에 내가 아름다운 곳에서 거주하고 삶이 안정됐을 때 이들이 놀러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Ch3. 배치, 그리고 좌절.
궁극적으로 교육기간 중 나는 단 한번의 선택 실수를 저질렀고, 이는 내 회사생활의 실패를 야기했다.
계열사 교육을 받을 때, 어느 사업분야에 갈지 배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교육하는 직원이 자꾸 어디론가로 나를 드리블하는거... 난 꼭 거기에 가야하는 줄 알았지 뭐야.
결론적으로 그 곳은 헬이었다.
서로 뭉쳐 일하고는 있지만, 개인사업적인 면이 강한 곳이었다.
처음에 교육을 시켜준다고는 했지만, 부족했고, 나도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는 한참 어리숙했었다.
생각보다 사회는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나는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게 맞는 말 같다.
실수의 반복... 그래. 실수는 할 수 있었다.
근데 그러한 생활을 잡아줄 선임이 없었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었고 나는 자생하는 법을 몰랐었다.
대리급으로 이 못난 신입사원에게 한명 붙여주기는 하지만, 그분은 딱히 나에 대해 신경쓰고 싶어하진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쁜건 아니고, 걍 각자 먹고 살기 바쁘다고 해야하나?
악의와는 별개로 나에게는 매우 안좋은 상황이 연출됐지만;;;
그러다보니 일도 못했다.
깊이 배우지도 못했고, 나도 생각이 번잡하여 깊이 배울 수가 없었다.
나 진짜 ㅋㅋㅋㅋ 극단적인 선택이랑 정신병원까지도 생각했었다.
독립하여 살게 된 작은 원룸, 나의 첫 차 아반떼, 사원증, 회사에서의 나의 자리 등등...
현대인들이 꿈꾸는 보통의 삶을 지내고는 있었지만, 진짜 죽고 싶을만큼 괴롭더라.
나에게 회사일이 안맞는 것인가. 역시 필드가 나에게는 적격인가.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좀 더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그리고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2014년 3~4월에 만료되는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있었다.
아... 워홀가면 좋았는데...
차라리 그만두고 외국나가서 살까.
Ch4. 퇴사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위에서도 내가 겪는 심경의 변화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다 교통 사고가 났다.
서울 도심 고속도로에서 내가 차로 변경 불가 구간에서 옆차로로 이동하다가 사고를 냈다.
100% 내 잘못이었고, 당연히 보험처리로 100:0으로 해드렸다. 보험사에서 나 되게 싫어할 듯.
그 전에도 경미한 사고는 두번 있었다.
한번은 주차하다가 차를 박았고, 한번은 빙판길에서 브레이크가 안먹혀서 사고를 냈다.
나 진짜 어느정도였냐면은...
주차하다가 남의 차를 찌그러트렸는데도 잘못된 줄도 모르고 걍 집으로 가버렸다. 명백한 뺑소니..
물론 나중에 경찰서에서 연락도 왔다. 상대측과 대면하진 않았지만 보험사를 통해 합의를 봤고....
나는 계속 피폐해지고 있었다. 피해자로서도 그렇지만 가해자로서도.
도심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낸 후 팀장님과 면접을 가졌다.
난 퇴사하겠다고 했다.
사실 무서웠다. 여기서 더 일한다는게.
주제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다만.... 한가지 핑계를 대자면...
만약에 계열사 교육에서 내가 내 직무를 놀이공원쪽으로 썼다면 소소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때 동물원에 자리가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런 한직이 나에게 적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년동안의 짧은 직장생활에서 제대로 된 후회는 딱 저 선택 하나였다.
어리석도록 시키는대로 잘 했던 착한 나. 멍청한 나.
Ch5. 본격적인 해외 이동살이 시작.
이를 시작으로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물론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일은 제외하고!
먼저 수중에 있는 뉴질랜드 워홀비자를 들고 남반구의 섬나라로 갔다.
그리고 호주에서 2년 남짓 살았고, 아일랜드에도 3개월정도 체류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 및 동남아 5개국을 여행했고, 홍콩도 갔다왔으며, 한겨울 시베리아를 기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서 동해로 귀국했다.
나이가 허락할 때까지 외국에 나가서 방황했던 것 같다.
음... 물론 방황이라고 하기에는 내 의지가 워낙 공고하긴 했지만;;;;
다시한번 후회를 하자면 좀 더 젊고 어릴 때 이민을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뭐 인생을 살며 어떤 선택이든 후회는 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 후회의 정도. 그 정도가 내 인생 및 계획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정도인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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