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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까지의 인생정리

[인생정리19][유럽3차여행1] 발칸반도. 유럽의 마지막 숨은 보석, 알바니아에서 시작.

아스라이39 2021. 3. 8.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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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일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계획은 무척이나 장대했다.

비행기따위는 타지 않고 오로지 배와 육상교통으로만 집까지 오려고 했는데.....

하아...

아일랜드 워홀을 짧게 끝내고, 돈도 그리 모이지 않아서 초반 서유럽 일정을 통으로 날렸다.

 

원랜 일정은, 영국을 여행하여 베네룩스 국가들을 통과하고 이탈리아를 종단. 

이탈리아 동부 '바리'에서 배를 타고 이오니아해를 건너 두브로니크에 도착하여 발칸반도 여행을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이 과정이 통째로 날라갔다.

하긴. 영국과 베네룩스, 이탈리아는 모두 값비싼 여행이 될 예정이라 유사시에는 제일 먼저 커트될 곳들이긴 했지만,

이렇게 죄다 날려보내니 아쉬웠다.

 

베네룩스는 패스해도 괜찮았다.

어짜피 관심도 없고, 그런 인종차별 국가들은 발을 디뎌보지 않아도 딱히 섭섭하지 않다.

다만... 영국... 이 나라 역시 물론 인종차별의 집대성이기도 하지만, 꼭 축구경기를 보고 싶었다. 게다가 로마시대 때 하드리아누스가 건설한 성벽. 그 터라도 꼭 보고 싶었다.

이탈리아... 사전에 로마인이야기를 읽어서 그런지 로마에서는 할거리가 많다.

게다가 밀란의 '최후의 만찬',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 등 굵직한 유명 관광지부터 시작하여,

친퀘테레, 카프리섬, 그리고 청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 된 '아체렌차'에 꼭 가보고 싶었다.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는 그 매력이란.

......

다 엎어졌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탓이오...

향후 5년동안은 분명히 유럽여행을 못할 것 같은데, 아아 진정 50~60대나 되어야 이 끝내지 못한 계획이 이루어질 것 같다.

 

여튼!

영국 본섬에는 못들어가고, 그나마 아일랜드에 붙어있는 북아일랜드에만 가서 영국파운드를 써봤다.

신기하더라. 오른쪽으로 다니던 버스가 정신차리고 보니 어느새 갑자기 왼쪽에 있어서.

영국의 이 가난한 변방도시에서 소소한 시간을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발칸반도로 넘어갔다.

 

발칸반도.

분명 구소련의 가난한 나라들이지만 이런 곳들이 진또배기이다.

남들이 겪지 못하는 신비하고 다채로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제발 본인 망상대로 위험할 것이라고 낙인찍으며 다른 나라를 험담하지 말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국수주의 독단적인 생각은 지양하자.

 

우선 발칸반도 여정을 정리하자면,

 

티라나 - 오흐리드 - 소피아 - 플로브디프 - 바르나 - 부쿠레슈티 - 시나이아 - 브라쇼브(브란) - 시비우(시기쇼아라).

 

그리고 몰도바를 넘어 우크라이나, 러시아로 갔다.

 

 

Ch1. 유럽의 진주.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서 귀국여행 시작.

 

 

 

알바니아는 유럽애들한테 이야기해봐도 아리송해하는 미지의 땅이다.

아시아에 미얀마가 있다면, 유럽에는 알바니아가 있는 것 같다. 그 대륙의 사람들에게서까지도 정보와 지식이 없는 날 것의 땅이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그런만큼 진짜 독특했으며, 가치가 있었다.

 

 

정말 그리기 힘들게 생긴 알바니아의 국기

 

 

터키항공을 타고 이스탄불을 경유해서 갔다.

티라나에 도착하면 한밤중인데 어떻게 시내로 들어가지?

알바니아에서는 그동안 사용하던 '3'통신사가 터지지 않아서 스마트폰도 먹통이 될텐데...

그러던 중 이스탄불 공항의 알바니아 티라나로 가는 게이트에서 한국여권을 든 여행객이 한명을 보았다.

내가 먼저 재빨리 아는 척, 반가운 척을 했다.

밤 늦은 시간에 티라나에 도착하면 분명 시내로 향하는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택시비를 아끼려면 이 사람과 쉐어해야한다! 친한척으로 접근했다.

근데 이게 웬 횡재. 자기 아는 사람이 공항으로 마중나오러 올거라고, 같이 타고 가게끔 자길 픽업해주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는거.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결국 그 사람들의 차를 얻어타게 됐는데,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알바니아인이 한명 있었다!!!

잘 기억은 안나는데 우리나라에서 교환학생인가?로 한국에서 생활했다고 했던 것 같다.

아직 내 페이스북 친구고, 한국 컨텐츠를 많이 올리더라 ㅎㅎㅎㅎㅎ.

여튼 진짜 우연찮게 귀인을 만나 편하게 티라나 시내로 진입했다.

 

숙소를 찾는데도 애먹었다.

늦은 시간이라 심카드를 살 수 없어서 아직도 인터넷이 안텨졌다.

앞서 말했다시피 여긴 아직은 어느정도 '닫혀있는 나라'다. 

아마 그래서 '3'통신사가 안먹히는 거겠지.

이 때가 2017년이었고, 벌써 만으로 3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엉거주춤 오프라인 지도앱으로 숙소근처를 서성거리자, 지나가던 알바니아인이 나에게 '백패커스?'라고 물으며 손가락으로 건물 하나를 가리키더라. 진짜.. 그렇게 쪼그맣게 간판이 있을 줄은 몰랐다. 생긴 것도 주택이라 더더욱 몰랐다.

이 사람이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기 전에도 어떤 사람이 자신의 폰으로 백패커스를 지도에서 찾아봐주기도 했다.

진짜... 친절한 알바니아인들이다.

 

숙소에는 영어가 아예 통하지 않는 노년의 남성분이 프론트를 보고 있었다.

진짜 손짓 발짓해가며 소통했고, 서로 웃겨서 계속 실소가 나왔다.

예상에 비해 숙소는 넓고 시설은 괜찮았다. 다행이었다.

 

티라나 이곳저곳 외곽도 돌아다녔다.

시내버스를 탔을 때, 탑승객과 티켓직원이 서로 시비가 붙었다.

근데 둘이 싸우면서도 내 눈치를 보더라 ㅋㅋㅋㅋ

외국인에게 밉보이지 않고 싶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만한게, 알바니아에는 나같은 동양인은 찾아보기 엄청 힘들다. 아니, 관광객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후로 마케도니아와 접경지역에서도 버스 안에는 관광객이 많다기 보다는 일하러 두 국가를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걸어가면서 보더를 통과했는데, 관광객이 몇 없더라.

아, 재밌던게 ㅋㅋㅋㅋ

보더 직원이 내가 한국인임을 알자 '팍지성??'하며 친근함을 표해줬다.

이제는 '손홍민??' 이러려나 ㅋㅋㅋ

엄격 근엄 진지를 모토로 하는게 보더직원이라는 내 상식을 다 깨부순 귀여운 반응이었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는 확실히 다른 국가들과는 많이 달랐다.

화폐야 뭐 다른 발칸반도처럼 자국화폐를 사용했다.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글자도 알파벳을 사용하여 적어도 읽을 수는 있게 만들어놨다.

문자는 이번 여행 내내 나에게 골치거리였는데, 알바니아만이 완연한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었다.

루마니아는 좀 변형된 알파벳을, 마케도니아에서는 그나마 알파벳과 혼용하긴 했지만, 적어도 알바니아에서는 다른 문자없이 오직 알파벳만을 썼던 기억이 난다.

음식도 독특했고... 맥주의 종류도 많았다. 맥주 저거 다 먹어보겠다고 많이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법도 생소해서 나에게는 되게 어려웠다.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였는데, 음... 왜 그리 어려웠는지 기억이 안나네. 사전에 인터넷으로 다 검색했었는데.

 

티라나의 모습은 그냥 우리나라 시내의 그것과 같았다.

주거지에서는 마트, 식당, 까페 및 과일파는 아저씨들, 통신사를 호객하는 직원들, 학생들... 인종만 다를뿐, 너무 한국스러워서 위화감까지 느껴졌다.

한번은 학교옆을 지나가는데, 점심시간에 운동장으로 나온 초등학생 무리들이 철창너머로 나에게 '안녕하세요~'를 시전하더라.

아니, 니하오나 곤니치와는 자주 듣는데 안녕하세요라니!!!?

난 어안이 벙벙해져서 안녕하세요로 되받아쳤더니 꺄아거리며 좋아한다.

진짜.... 외국에 나온 기분 나더라 ㅋㅋㅋ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친구들 역시 BTS때문에 '안녕하세요'라는 낯선 인사말을 익힌게 아닌가 싶더라.'

역시 BTS의 위엄은.... 어휴 ㅋㅋㅋㅋ.

 

구 소련의 잔재를 엿볼 수 있는 분칼트 Bunk Art.

티라나 시내에도 분칼트가 있지만, 외곽에 있는 분칼트가 훨씬 더 을씨년스럽다.

 

 

알바니아도 마찬가지지만, 구소련의 국가들에서는 소련의 발자취를 보고 느낄 수 있다.

음... 비단 소련뿐만 아니라, 전쟁이 한창이던 1900년대 초중반 파쇼정권의 어두운 면도 볼 수 있는데, 알바니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티라나에는 분칼트 Bunk art. 즉, 벙커아트라는 관광상품이 있는데, 옛 지하기지를 관광화한 상품이다.

그 어둡고 을씨년스럽고 고어하기까지한,

실험체와 독가스, 방독면 등의 단어가 연상되는 기괴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관광이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당시의 상황을 보고 느끼고 듣고 싶은건 어쩔 수 없다. 이건 세계여행이 아닌가!

그 나라의 역사와 현재를 보는 것만큼 보람찬 일도 없을테지.

 

친절히 택시 호객행위를 물리쳐주신 Bunk Art앞에서 만난 현지인. 직원인가?

 

분칼트는 티라나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돌아오는 길에 친절한 안내원 아저씨가 버스정류장을 안내해주며 나에게 관심을 표하였다.

아 이 사람들이 제발 무례한 한국인을 만나고 우리나라에 대한 나쁜 인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티라나 시민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친절한 사람들을 무지 많이 만나서 나는 알바니아에 대해 좋은 인상이 많이 남았다.

 

정말 여긴.... 친절한 나라 알바니아다.

 

 

티라나 외곽 다히티Dajiti 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그곳에서 본 티나라의 가을 전경은 장관이었고, 저 멀리 알바니아의 해양도시 두레스 Durres도 보였다.

 

생각해보면 별거 없던 알바니아였지만, 또 가고 싶어진다.

어떻게 변했을지? 얼마나 편리해졌을지?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순박한지...

다히티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안에서 나에게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려고 했던 현지인 노부부.

숙소 프런트를 보던 노인.

내가 내장요리를 못먹자 섭섭해하던 알바니아 전통음식 식당의 종업원.

 

아 모두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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