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는 아직까진 동아시아 여행객들에게서 숨어있는 보물같은 나라다.
비유를 하자면 코로나 전에 잠깐 붐이 일었던 코카서스 지방인데, 이제 여기서도 유명관광지의 중국인들 마냥 한국인들도 몰리게 되고, 외국인 혐오가 생기고, 상업적으로 변질되는건가 싶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코로나때문인지 지역의 특색때문인지 코카서스 지역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반짝 잠시 뿐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기는 그 지역의 변질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한 장소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최대한 변질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최대한 일찍 그 지역들을 감상하고 싶다는 것이다.
불가리아 역시 마찬가지.
균열이 가고 배수가 안되는 거리, 50년은 훨씬 넘었을 수도 소피아의 아파트들, 낡은 기차, 그리고 자국화폐 사용 등 이러한 것들이 변질되기 전에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겪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에 중국인들과 한국인, 인도인 등 아시아가 침범하게 되면 지역적 특색을 잃고 다른 곳들과 똑같아질 것이다. 그 전에 우리는 여기를 방문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국기를 90도로 돌리면 불가리아 국기가 된다.
여행하면서 국기를 볼 때마다 풀을 불에 태우는 형상이라고 생각했었다.
Ch1. '층'의 도시. 유적의 도시. 가난하고 음험한, 때로는 화려한 도시 소피아.
소피아는 한 나라의 수도지만, 맨 처음 봤을 때 강렬하게 느꼈던 것은 가난이었다.
내가 자꾸 가난한 도시다, 가난한 나라라고 일컫고 있는데, 가난함의 상징이 몇개가 있다.
일단 유동인구가 많음에도 비가 오면 물이 안빠진다.
건물들이 다 낡아 무너지기 직전같아보이는데 리모델링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도로가 갈라졌다.
뭐 이런 것들이다.
소피아는 도시 자체가 유적지였다.
아니, 불가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고대 로마시대부터 층층이 쌓인 유적의 도시였다.
이른바 '층'의 도시.
City of layers라고 무료 뚜벅이 투어 가이드는 설명하곤 했다.
지금 소피아 시민들이 내딛는 땅 아래로 겹겹이 과거의 문화가 쌓여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 발밑에 선조들의 터전이 고스란히 숨어있다니.
이러한 환경적 요소때문에 소피아 시내의 지하철역을 보면, 통로 여기저기에 발굴된 유적지를 볼 수 있는데 매우 신기했다.
지하철 역 뿐만 아니라 호텔에서도 지하가 유적지인 곳이 있었다.
땅위로 올라오면 과거 구 소련의 스탈린식 건물들이 있다.
정교회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또한 볼만하다.
마케도니아에 이어 여전히 물가는 폭발적으로 저렴하고, 맛있는 것들은 많다.
아무 시장에 들어가 먹는 현지 생맥주는 기가 막히다.
이렇듯 발칸반도의 여러 국가들은 거리적 제약만 없다면 자주 가보고 싶은 곳이다.
마치 아시아에 동남아시아가 있다면, 유럽에 동유럽, 발칸반도가 있는 식으로 대응이 되지만,
그들의 문화나 발전, 음식 등은 동남아시아와는 사뭇 다른지라 아시아권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색적이고 신비한 것들이 많다.
소피아서부터 우크라이나 키예프까지 무료 뚜벅이 투어를 부지런히 이용했다.
무료뚜벅이투어는 시드니에서 샘과 여행할 때 처음으로 이용해본 서비스인데, 그 도시의 이곳저곳을 두세시간 걸으며 알차게 돌아다니는 관광서비스다.
시에서 주관하는 단체는 아니고, 주로 민간업체에서 기부를 받아 진행하는데, 투어 종료 후 여행자들이 감사의 표시로 전하는 팁도 그 중 하나이다.
소피아에서는... 굳은 날씨에 비도 맞고 힘들긴 했지만, 서로 모르는 다국적 관광객들이 모여 서로 같이 돌아다닌다는게 꽤 재밌는 일이긴 하다.
유산균의 땅 불가리아!
아아 포스팅하면서도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드네.
요새 치앙마이다 어디다 하며 한달살기가 유행인 것 같은데,
발칸반도의 여러 도시들 또한 한달살기하기 매우 좋은 것 같다.
비단 불가리아 혹은 소피아가 아니더라도 발칸반도의 여러 지역들이 저렴한 물가와 인종차별안하는 사람들, 매력있는 환경들로 말미암아 매우 매력적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소피아에서는 음.. 그리 다이나믹하게 보내진 않았다.
대신 안락하게 보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인식당에도 가봤는데, 약간 분식점 느낌이 들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중2병 걸린 현지인 아이들이 BTS의 호르몬전쟁이 나오는 TV를 보며 키...스하고 있었다..... 그래 여긴 유럽이다 유럽.
내가 김밥이니 뭐니 부랴부랴 먹고 있으니 자꾸 쳐다본다.
막 조그맣게 노래부른다.
제발 그러지마 ㅠㅠㅠㅠㅠㅠ 으악 ㅠㅠㅠㅠㅠ.
근데 되게 양아치처럼 생긴 애들이 내가 식사 후 배식대를 어찌해야할지 모르니까 친절하게 제스처로 지시해주더라.
착한 애들이었어.
알바니아에서도 느꼈지만, 2017년 이미 BTS는 불가리아마저 섭렵하고 있었나보다.
이후로 바르나Varna라는 불가리아 해양도시에서도 한인식당에 방문하는데, 거긴 한국에서 아예 한국 음식을 배우고 온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인테리어 역시 K팝 스타들로 화려했었다.
소피아는 지하철이 인상깊었다.
물론 층의 도시답게 여러 문화제들이 즐비한 것이 인상깊었지만, 그밖에도 구 소련 국가들이 늘 그렇듯 역사의 화려한 외관과 인테리어가 인상깊었다.
소피아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차를 타고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기차역에서는... 어떤 노숙자가 ID카드같은 것을 보여주며 나에게 관광객을 돕는 중이라고 통역 비슷한걸 해줬는데..
결국 나중에 돈내놓으라고 하더라. 아오! 난 필요 없었는데;;; 지가 마음대로 붙어서 입만 연거면서;;;;;
에효 뭐 어떠하리..
계속 좋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 노숙자때문에 기분 잡쳤네.
진짜 여기를 다니며 동남아국가랑 비교를 안할 수가 없었는데,
노숙자에 대응하며 느낀 이런 점에서는 마치 인도네시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더라.
소피아 외곽의 릴라 수도원 Rila Monastery.
소피아 자체보다는 외곽에 멋지고 흥미로운 유적지 및 관광지들이 많았는데, 정보도 없고 시간, 돈도 제약이 있어서 많이 못돌아본 것이 아쉬웠다.
여기서 내부사진을 찍다가 사제님한테 한소리 들었다.
촬영금지였는데 분명 봤는데 깜빡했었다.
거듭 사과드렸고, 나중에 여길 떠나기 전에도 다시 찾아가서 사과했다.
물론 그는 날 중국인으로 생각했을 것 같지만, 어쨌든 나는 외국인에게 어글리 코리안으로 기억되기 싫었다.
Free Sofia Tour 페북사이트에서 받은 우리 단체사진.
소피아부터 대도시에 갈 때마다 무료 뚜벅이 투어를 신청하여 같이 다녔다.
아니, 다른 시간대 다른 조들은 다 잘만 찍어주던데, 우리는 이게 뭐냐구요...
왼쪽 뒷줄 두번째가 나다.
Ch2. 고풍스러운 올드타운의 도시 플로브디프.
소피아 다음 일정으로 두가지 루트가 있었고 나는 한곳을 선택해야 했다.
하나는 '벨리코터르노브', 다른 하나는 내가 방문한 '플로브디프 Plovdiv'다.
벨리코가 어떨지는 가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플로브디프를 방문한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관광지, 음식, 전망, 자연, 시내 등 많은 것들이 완벽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꽉 찬 육각형의 관광지였다.
게다가 날씨도 좋았고 고양이들까지 있었으며 숙소마저 고풍스럽기 그지없어 만족스러웠다.
여기서도 무료 뚜벅이 투어를 했다.
올드타운 자체가 고풍적이고 멋져서 가이드를 따라 걸어다니기만 해도 즐거웠다.
창문쪽이 돌출되어 있는 옛 건물 디자인은 몇백년전 사람들이 세금을 아끼기 위해 터키였나? 그쪽 양식을 도입하여 정착시킨거라고 한다.
이곳 역시 소피아와 마찬가지로 '층'의 도시라 지하에는 옛 도시의 터전이 시내 아래에 매장되어있다.
게다가 마치 서울의 명동과도 같은 플로브디프의 번화가가 하필 유적지이 발굴되기 전에 딱 유적 위에 건설되어 발굴을 하는데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플라브디프에는 제주의 오름을 연상케하는 언덕이 크게 세 곳, 다 합치면 예닐곱개가 있다.
그곳에 올라 마을을 구경하는게 꽤나 멋졌다.
특히 날이 맑고 하늘이 푸르러서 많은 이들이 언덕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현지인인 듯한 외국인이 언덕 꼭대기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눴다.
나는 풍경이 너무 감동적이라 말하고, 그는 한국에서는 이런 것을 볼 수 없냐고 묻는다.
아냐. 이제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이런 뷰를 볼 수 없어.
씁쓸하게 대꾸하며 마음 한켠이 쓰라렸다.
요새는 미세먼지때문에 맑은 하늘조차 구경하기 힘드니 말이다.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도시.
너무 아름답워서 여기서 주욱 머물고 싶었지만, 역시 시간과 예산은 나에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난 다음 방문지로 발길을 돌렸다.
몇몇 불가리아의 기차는 엄청 낡았다. 50년은 넘어보이는 기차였다.
그래서 이 기차들이 사라지기 전에 타봤다는 그 사실에 감사했다.
기차 안의 노인들은 나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우리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길게 소통할 수 없었다.
Ch3. 처음 본 흑해. 온천의 해양관광도시 바르나.
생각보다 좋진 않았다.
따뜻한 흑해의 휴양도시어야했는데, 시기적으로 겨울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날씨도 구물구물거려서 그다지 좋진 않았다.
다만, 여기는 스코페와는 달리 날씨 좋을 때 오면 훌륭히 멋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의미있던건 태어나서 처음으로 흑해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호주에서 처음으로 인도양을 접한 그 감동과 마찬가지의 벅차오름이었다.
바르나의 랜드마크는 명실공히 '성모영면 대성당'같다.
성모가 영원히 잠들어계신? 그런 의미인 듯.
여기는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내부에서 사진촬영을 허용해줬다.
그래서 성모교회의 웅장하고 화려한 내부장식과 아이콘 등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고위 신도자가 끈으로 연결한 향로를 흔들며 돌아다니는 것도 보았다.
무슨 종교의식같았는데, 정교회 자체가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인지라 뭘 하는건지, 그 신도자가 어느정도 고위직인지 잘 모르겠더라.
바르나에는 한국에서 살다 온 불가리아인이 운영하는 한국식 분식집이 있다.
여기 ㅋㅋㅋㅋ 김밥이 진짜 우리나라 집에서 만든 김밥이랑 똑같았다.
참기름문제인 것 같은데, 어쨌든 집에서 해먹던 익숙한 맛이니 반가웠다.
비빔밥은 맛있었다.
하긴 비빔밥이 맛없기도 힘들지.
동유럽 내내 음식들이 내 입맛에 맞아서 먹는걸로 고생하진 않았지만, 역시 한식만큼 내 몸에 맞는 음식은 없었다. 신토불이.
바르나에서 짧은 일정을 마치고 루마니아로 넘어갔다.
바르나는 여름에 오면 분명 멋질 것이라 생각한다.
해양 휴양도시답게 바캉스 시설이 구비되어있었으니까.
또한, 온천도시답게 식수대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음수 가능이었다.
백사장 근처에는 아예 약수터가 있어서 사람들이 물을 길러 왔다. 우리는 산으로 가는데 이 사람들은 바닷가로 가네.
비수기 휴양도시의 호스텔에서는 폴란드, 브라질, 호주, 러시아 사람들과 조용하게 같이 머물렀는데, 호주애는 약간 인종차별기가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괜찮았다.
특히 러시아 애가 인상깊었는데, 가족들이랑 같이 배를 타고 지구한바퀴 도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
지금은 겨울이라 잠시 각자 시간을 갖고, 날이 풀리면 어디더라? 그리스였나? 거기에서부터 다시 항해를 시작할거라고.
여러모로 재미있는 도시,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바르나를 떠나는 날 아침, 같은 숙소를 사용하던 멤버들과 노상 무료 온천에 놀러갔다.
호주, 폴란드, 러시아, 브라질, 그리고 나. 와아... 이렇게 보니 다양한 대륙의 조합이었네.
바르나 시내에서 좀 떨어진 버스터미널로 가서 다음 행선지인 루마니아로 향했다.
이때는 몰랐지. 불가리아만큼 즐거운 여행이 계속 되리라는 것을.
망해버린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에 비해 너무나도 즐거운 뒷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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