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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까지의 인생정리

[인생정리9] 2015년 시작.싱가포르 여행, 그리고 호주워홀 밑천 마련하기.

아스라이39 2021. 3. 5.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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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 뉴질랜드 워홀 귀국여행. 3박4일간의 싱가포르.

 

 

캐나다 워홀을 마치고 유럽에서 1달 반 가량을 돌았던 것에 비해 매우 조촐하기 그지없는 귀국여행이었다.

게다가 없는 돈에 더불어 추가로 불행이 많이 겹쳤던지라 기운은 더 없어졌다.

 

먼저, 공항에 도착하여 ATM기에서 돈을 꺼내야 하는데, 비밀번호를 세번 틀렸다.

신용카드가 봉인됐다.

...시작부터 이러기냐...

그래서 수중에 있던 뉴질랜드 달러... 약 20만원 돈의 뉴질랜드 달러로만 싱가포르에서의 일정을 해결했다.

다행히도 간혹 신용카드로 계산할 수 있는 곳에서는 추가적으로 돈을 쓸 수 있었지만,

차이나타운을 숙소로 한 나로서는 먹는 것에 있어서 현금을 지불해야 할 일이 많았다.

 

3박4일 일정도 에러였다.

아니... 3박4일은 충분한 일정이었는데, 금전적 제약을 받다보니, 본의아니게 긴 여정으로 되어버렸다.

중간에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의 '레고랜드'까지 다녀왔는데도 시간이 남았었다.

땅이 그리 넓지 않다보니 이동하는 시간도 매우 절약되었다.

뭐지 이 미친듯한 아이러니는;;;

 

근데... 이렇게만 보면 분명 불행했어야 할 싱가포르 여행인데,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고 재미났던 3박4일을 보냈다.

이 또 다른 아이러니는 뭐지...

 

마리나베이 샌즈, 시라이언 등 랜드마크들을 돌아봤고,

힌두, 아랍, 중화권 등 여러 문화가 맞물려있던 차이나타운과 아랍스트릿은 나에게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이런 재미난 나라가 다 있나.

힌두 사원은 처음으로 가봤다.

2년 후 말레이시아 여행가서 또 가보기는 하는데, 형형색색 괴기스러운 종교조형물들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음식 또한 훌륭했다.

가장 유명한 칠리크랩은 오히려 별로였다.

없는 돈 쥐어 짜내며 사먹었는데 꽤 별로였다.

반면,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는 죽이나, 카야토스트, 차이나타운 푸드코트의 수많은 음식들이 내 입맛에 맞았다.

역시 내 입이 저렴해서 저렴한 음식에 더 끌리는건가...

싱가포르에서 먹는 타이거 맥주는 표현할 수 없이 훌륭하다.

 

싱가포르의 하이라이트는 센토사였다.

돈이 없어 입장을 못한 유니버셜 스튜디오... 입구에서 사진만 찍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센토사 거대석상에 들어가서 싱가포르의 역사를 배우고,

해변을 거닐며 섬 리조트를 만끽했다.

와아.. 여기서 친구들 데려다가 몇박 묵으면 재밌겠더라.

 

마리나베이 샌즈 근처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는 하늘로 우뚝우뚝 솟은 나무조형물들이 인상깊었다.

특히 저녁에 두번 레이져쇼를 하는게 멋있었는데,

한번은 멀찌감치서 구경했고,

다른 한번은 나무조형물 기둥 아래의 평상에 누워 쇼를 감상했다.

가야금으로 타는 듯한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소녀시대의 GEE가 나와 놀라우면서도 기분 좋았다. 역시 한류.

 

 

싱가포르 여행을 끝으로 진짜 통장이 바닥을 드러냈다.

아니, 그래도 반년동안 회사생활을 했었는데 도대체 왜 돈이 없는건지 이해가 가질 않지만 어쨌든. 난 그지였다.

귀국 후 바로 호주 워홀을 신청했다.

 


 

 

아시아 대륙 최남단은 싱가포르 센토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또한 센토사가, 싱가포르가 매력적은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Ch2. 호주 갈 밑천을 마련해보자.

 

 

과장하는게 아니라, 진짜 내 통장잔고가 0에 수렴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뭣 때문에???

지금 돌이켜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분명 그 때 뭔가 돈이 빠져나가는게 있어서 그랬었다.

분명 회사다닐때 어느정도는 모아놨었는데??

휴우...

 

호주워홀비자는 얻기가 매우 쉽다.

신청만 하고, 신검만 무사히 마치면 된다. 그저 돈주고 사오는 식으로 비자를 얻을 수 있다.

...

이러니 호주 워홀을 하는 사람들의 퀄리티는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국가들에 비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여튼!

공장에 들어갔다.

한국에서의 내 인생 첫 공장일이었다. 

주야 2주씩 교대하며 한달여를 일했는데, 확실히 돈이 되긴 했다.

이게 무려 6년전인데, 2019, 2020년에 서울 호텔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받았으니 할 말은 다 했지.

아 물론, 야간일이 겹친대다가 하루 평균 12시간 근무였긴 하지만...

.... 공장에서 많이 받던게 당연한거구나;;

 

진작 학창시절에 방학때라도 왜 공장에서 일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돈에 쪼들리며 살지 않았을텐데...

맨날 주구장창 게임만 반복하며 남는게 없는 생활을 했던 것 보다는 빡세게 일하며 돈을 벌었어야하는데.. 하는 후회를 했다.

 

그렇다고 공장일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난 사고를 많이 쳤고,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었으며, 그 긴 시간동안 집중해야 했다. 어휴.

사출공장.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긴 하다. 

 

음...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하고는 싶지 않되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뭐 굳이 공장일이 아니더라도 학창시절 때 일좀 많이 할껄... 끽해야 편의점 몇달 한게 고작이었지. 전역하고 횟집에서 등록금 번거랑. 호텔일이라도 꾸준히 했어야 했는데 너무 경제관념이 없었다.

 

뭐 어쨌든 나는 한달간의 공장일을 마치고 2015년 5월에 호주로 떠났다.

내 나이 30세. 진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였다.

 

그. 러. 나....

기대반 설렘반의 심정과는 달리, 초반 호주생활은 또다른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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