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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까지의 인생정리

[인생정리25][유럽3차여행7] 그리고 비로소 드디어 러시아 횡단.

아스라이39 2021. 3. 1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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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향하던 새벽.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늦춘다.

국경이다.

멈춘 기차 안으로 다수의 이민관들이 탑승객들의 여권 및 비자를 확인한다.

나의 여권을 본 이민관이 나에게 비자를 요구한다.

'난 싸우스 코리안이야. 소치올림픽 후부터 비자 없어도 돼'.

이민관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본인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별 제재없이 나에게 여권을 넘기고는 한동안 있던 작은 소란을 끝낸 후, 기차는 다시 겨울나라를 달린다.

 

러시아. 이건 뭐....

2011년때의 여행레벨 1이었을 때나 두려움의 대상이었지, 이때 쯤의 나에게는 러시아횡단따위는 그저 약과에 지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나는 2011년에 만약 러시아를 횡단하게 된다면 모스크바를 그냥 패스할 생각을 했었다.

인종차별이 있을 것이다. 스킨헤드가 있을 것이다. 두드려 맞을 것이다. 위험하다 등 내 짧은 선입견으로 모스크바를 판단했었다. 타인, 타국을 단정짓는 추하고 부끄러우며 어린 생각이었다.

러시아는 온 나라 통틀어 나아게 친절했다. 인종차별이 간간이 일어난다고 하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참고로 러시아에서 위험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비싼 모스코바 물가.

 

Ch1. 인종차별은 개뿔. 평화로운 모스크바 붉은 광장.

 

 

가격파괴의 우크라이나에서 모스크바로 오니까 물가가 몇배나 올라버렸다.

무슨 우리나라보다도 더 비싸;;;; 충격의 도가니를 오가며 모스크바를 돌아다녔다.

 

모스크바는 안전하다.

특히 굼 백화점쪽의 관광지가 특히 안전한데, 거기에 중국인들이 무지막지하게 많다.

굳이 당신이 그곳에서 범죄의 타겟이 될 일은 없으니 안심하라.

만약 당신이 거기서 범죄의 타겟이 된다면 본인을 돌이켜보자. 왜 그 많은 똑같이 생긴 동양인들중에서 하필 당신이 선정됐을까.

 

레닌 무덤에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요일이 맞지 않아 들어가보지 못했다. 아쉬웠다.

성바실리 성당은 진리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피흘리는 사원 생각이 났다. 둘 다 너무 아름답다.

 

한창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던 모스크바에서 알바니아에서의 은인을 만나 같이 돌아다녔다.

푸쉬킨 미술관에 같이 갔고, 굼 백화점에서 아이스크림도 먹었으며 붉은 광장을 같이 활보했다.

좋~은 추억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러시아는 겨울 낭만이 물씬 풍겼었다.

.....정작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챙기고 있지 않다는데 엄청 분위기 내네.

 

모스크바를 나서고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TSR. Trans Siberia Railway. 이른바 시베리아 횡단열차.

유럽에서 극동을 잇는 이 광활한 대륙을 철마는 달린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있다.

 

모스크바 - 카잔 - 노보시비르스크 - 이르쿠츠크 - 하바롭스크 - 블라디보스토크

 

넓디 넓은 러시아의 대부분을 생략하며 중간중간 굵직한 곳만을 들렀다.

모스크바 다음 목적지는 카잔이라는 곳이었으며,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이 기적을 만들어낸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탑승했던 고급차량과는 차이가 많다.

비싼 칸에서는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3등급을 이용하면 현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친구랑 떠난다면 독립적인 카빈을 추천하지만, 한두명이나 혼자 떠나는 시베리아 횡단이라면 무조건 3등칸을 타자.

게다가 3등칸은 곧 없어진다고 하던데 벌써 이미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Ch2. 여름에 왔으면 더 멋졌을 카잔 여행.

모스크바를 벗어나 카잔으로 향했다.

카잔 역시 여름에 왔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도 아름답고 볼거리도 많고 물가도 저렴했다.

무엇보다도 숙소에 한국말을 공부하는 러시아애가 있어서 걔때문에라도 여기서 오래 있고 싶었다. 우리 말을 더듬더듬하는 외국인 애들은 귀엽기 짝이 없다.

 

 

여기서 중국계 호주인 친구도 만나게 되었다.

종탑에 올라갈 때 오픈 시간이었나? 그런걸 물어보며 말을 걸어 친해졌는데, 음.... 중국인은 결국 중국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친구였다.

해외에서 만난 중국인은 보통 국뽕은 없는데 얘는 왜...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한국에서 만났을 때 우리나라 식당이 얘가 중국인이라고 사기치는걸 보고 미안한 생각과 죄책감이 들었었다.

 

카잔에서 유명한 것은 단연 쿨 샤리프 이슬람사원이다. 하얀 외관에 파란 지붕. 그리고 아치형의 아름다운 건물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내부를 관람할 수 있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볼 수도 있으니 방문하길 강추한다.

난 쿨 샤리프 사원 모형도 구입해버렸다.

 

카잔의 또하나의 매력이라면 현지 특산품인 '촥촥'이라는 과자였다.

달고 부드러우며 꿀맛이 난다. 식감은 기름먹은 부드러운 과자 정도?

 

카잔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마지막 날 숙소에서는 수학여행인지 뭔지 아이들이 대거 체크인 했다. 불편하긴 했는데, 애들이 나한테 이거저거 물어보고 그래서 더 귀찮았다......지만, 내심 좋았다.

이상타. 러시아에서 동양인을 보는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유독 관심을 보였던거지? 희한하네.

 


 

카잔 마지막날 방문했던 재래시장에서는 무려 김치를 팔고 있었다.

나중에 이르쿠츠크에서 결국 러시아 김치를 사먹게 되는데, 딱히 만족스럽진 않았다.

바가지를 씌우는게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맛있었다.

낯선 땅의 우리 고유의 음식 김치.

이것은 우리 고려인이 전파한 문화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정이 갈 수 밖에 없었다.

 


 

 

Ch3.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말이 횡단이지 열흘이 넘는 시간을 기차안에 있어야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할게 없어서 그냥 창밖을 보며 멍때리는게 일상이다.

 

 

단연 사람들의 마음은 흐트러지고, 3등 객실을 자기네 집 안방이 된다.

 

 

각 객실마다 구비되어있는 시간표.

영어로도 기재되어있어 키릴 문자를 몰라도 읽을 수 있다.

시간은 꽤 정확하게 지켜지는 편이었는데, 세상에 캐나다 횡단열차보다 훨씬 낫네.

간혹 기차는 길게 멈춰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그 낯선 도시를 돌아본다던가, 음식을 충당한다던가, 아니면 정말 가끔 샤워시설이 갖춰진 역사에 들어가서 소정 금액을 지불하고 씻었다.

..... 가루샴푸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나는 이 때 머리가 기름에 떡진 상태를 모자로 가리며 계에에속 씻지도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이 정도로 동쪽으로 왔으면 아시아로 넘어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을 때 사먹은 밀키스 딸기맛.

 

 

 

절반가격의 현지 컵라면과 도시락 큰사발.

둘 다 비추다.

전자는 뭐 현지식이니까 기념으로 먹는다고 치지만, 도시락 큰사발은 육개장 큰사발이 사발면에 못미치는 것과 같이 원판보다 별로였다.

 

라면, 빵, 과일 등으로 연명하던 그 때가 생각나는데 생각보다는 낭만적이었다.

어떤 아저씨는 의자아래의 보관함(이라고 쓰고 천연냉장고라고 읽는다)에 햄, 치즈, 빵을 두고 매 끼니마다 나이프로 저며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거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 그 아저씨는 날 구경했겠지만.

 

노보시비르스크라는 시베리아 한가운데의 나름 대규모 도시에서도 머물렀었는데, 숙소도 별로였고 도시도 특색이 없어서 그냥 음.... 지나가는 용도로만 머물렀던 것 같다.

그리고 기차는 다시 동쪽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이르쿠츠크로 향했다.

 


 

역시 말이 잘 안통하는 국가에서 여행하기란 힘들어.

감자(소)-버거-감자(대)의 주문 대참사.

어쩐지 싸다 싶었다. 난 치킨인줄 알았잖아.

 

 


 

Ch4. 바이칼 호수의 그곳. 몽골과의 문화적 헬레니즘. 여기는 이르쿠츠크.

 

이쯤되면 아시아다. 유럽 아니다.

이르쿠츠크는 한국인들도 많이 오는 관광지인지라 여기서부터는 친숙한 분위기였다.

숙소에서도 한국인을 만났고, 정보도 많았다.

 

이르쿠츠크 기차역에서 내려 트램을 타고 숙소를 찾아갔다.

여느 숙소와 마찬가지로 비수기를 맞아 숙소 안은 한가했고, 나는 모든 시설을 넓디 넓게 쓸 수 있었다.

 

 

나름 이르쿠츠크는 일정도 3박으로 긴 편이었고, 비수기인데 반해서 여러가지를 보고 맛보고 즐겼다.

만두도 먹었었는데 역시 만두는 노량진 다이소 삼거리의 갈비만두가 제일이여. 아 그립다.

트램을 타며 현지인들과도 부대꼈고, 현지인들이 즐겨 찾을 것 같은 탭맥주집도 가서 잔맥를 사먹었다.

그리고 보이는 대왕 관광여행사.... 어디까지 가니. 한국관광.

이르쿠츠크의 카잔성당은 지금껏 보아온 정교회 성당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장관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르쿠츠크에 온 이유는 비단 이 매력적인 도시뿐만이 아니었다.

난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 바이칼 호수에 가보고 싶었다.

 

 

바이칼호수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이 광활한 호수를 밟아보고 싶었는데, 12월의 추위로는 그 거대한 호수를 얼릴 수가 없어. 얼리질 못해.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 그저 추운 날의 호반의 도시에서 기웃거릴 뿐이었다.

아, 레이크 비얀카에 '오물'이라는 물고기를 파는데 이거 꼭 먹자.

 

그냥 손으로 비늘을 벗기고 집어먹게 되어있는데, 부드러워서 먹기 불편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담백한게 맛있다!!!!

맛있어!!!

다 필요없고 맛있다고!!!

이거 강추. 꼭 먹어보도록 하자.

 


 

Ch5. 짧은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여정. 그리고 귀국 및 3차 유럽여행 종료.

 

 

 

사실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는 그리 인상깊지 않았다.

하바롭스크는... 그야말로 딱히 즐기질 못했다. 그냥 진짜 지나가는 기분으로 들렀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뭐.. 둘 다 얼어붙은 아모르 강가를 거닐었다는 점에서 의미깊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연안이 얼어붙어 바다 위를 활보하기도 했다.

게다가 어쩌다보니 한국인 2명, 일본인 1명과 인연을 맺어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음... 이 때가 막 2018년도로 넘어오던 시기였는데, 이들을 진작에 알았다면 연말을 함께하며 즐겁게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난 연말에 숙소에서 티비보며 조용히 보냈다.

....그 때 만난 한국인 형님은 크리스마스를 기차안에서 보냈는데, 승객이 그 열차칸에 자기 혼자밖에 없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한국어 간판이 많이 보인다.

그만큼 자주 온다는 이야기겠지.

실제로 거리 곳곳에는 당시 유행하던 롱패딩을 입은 사람들을 엄청 많이 봤는데, 죄다 한국인임에 틀림없었다.

 

여행의 끝이 다가왔다.

여객터미널에서 티케팅을 하고 이제 본격적인 귀국준비에 들어갔다.

배는 가장 저렴한 티켓으로 구했는데, 음... 시설이 그리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떠나는 블라디보스톸 항에 치어스!

배에서 식사가 제공되긴 했지만, 난 마트에서 미리 사온 빵으로 연명했다.

운항 시간은 22시간인가로 측정됐었는데, 실제로는 26시간인가 걸려서 동해항에 도착했다.

배 안에서는 콘센트도 없어서 매점에 가서 돈을 주고 충전을 해야했고,

무엇보다도 어이없던게, 러시아-한국-일본행 페리인데, 러시아 루블이 통용되지 않았다.

망할. 이런게 어딨어. 일부러 배에서 쓰려고 환전 안하고 있었는데!!!!

 

 

그런 불만마저도 이제는 아름답게 기억되는 나의 3차 유럽여행이자, 아일랜드 귀국여행. 그리고 지구한바퀴돌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음....  배를 타는 것도 좋았지만, 통일이 되었거나, 북한을 통과만 할 수 있었어도 기차로 서울까지 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배값은 생각보다 비쌌고, 시설은 열악했으므로 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고국이 좋긴 좋구나.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컨디션이 차오르고 기운이 솟아난다.

모르는 동네 동해시.

바로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터미널로 가는 버스노선을 검색한다.

버스가 안온다.

정류장을 오인했다. 다시 되돌아가서 제대로 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

 

나의 여행 시작점인 캐나다 워홀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그동안 많은 여행도 했고, 경험도 쌓았으며...

무엇보다도 나이를 먹어버렸다.

이제는 내 인생의 결정을 내릴 때였고, 나의 선택은 역시나 캐나다였으며 이민을 시작할 때가 왔다.

하지만 그 전에... 돈부터 벌자는 생각으로 한국에 2년동안 체류한다.

흐음... 이 때가 2018년이었으니까..

만약 내가 바로 캐나다로 갔다면, 1년간의 학사과정후 19년에 영주권 절차를 밟기 시작했겠지.

..... 요즘처럼 코로나가 창궐한 뒤숭숭한 이 시기에 차라리 이 때 바로 캐나다로 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튼 나의 여행기록은 잠시 중단.

2년간의 한국생활에 들어갔다.

 


 

 

이거저거 야무지게 모아왔다.

음.... 드라큘라... 역시 그 때 샀어야 됐어. 아쉽당.


 

 

집에 들어가기 앞서 할매해장국에 들러 뼈해장국을 먹어봤다.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먹었던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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