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난 아일랜드에서 인생 마지막 워홀을 보냈다. 그리고 실패하고 조기퇴국했다.
아일랜드에서 굳이 뉴질랜드 때나 호주 때처럼 저력으로 버티지 않았던 이유는 몇몇개 꼽아볼 수 있겠지만, 그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한국에서 올림픽이라는 매력적인 이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한 일원으로서 일해본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컨텐츠인가.
그들이 날 고용해줄지 안 해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여튼 아일랜드를 떠날 때에는 평창올림픽도 어느정도 염두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게다가 2002년 월드컵 때에는 고등학교에서 열공하느라 그 어떤 경기도 직관하지 못했다는게.......라기 보다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못간거지. 88때엔 3살이었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세계적인 행사를 두번 다 TV로만 겪어봤다는 그 아쉬움을 이번 올림픽에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올림픽을 한달정도 앞둔 2018년 1월 3일.
난 한국에 돌아왔다.
운이 좋은건지 아닌건진 모르겠다.
나는 어쨌든 강릉선수촌 캠프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팀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선수들의 짐을 받고 보내는 업무를 맡았다.
올림픽을 하며 보람찬 나날들이긴 했다.
각국의 대표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업무를 도왔고,
야간일이었던지라 특별한 날이 아닌한 그리 바쁘지도 않았다.
팀원도 고작 3명 뿐.
몇백명이나 될 선수들의 짐을 책임지기에는 적은 숫자였다.
뭐 대부분의 업무는 몇십명이나 근무하는 낮에 이루어지긴 했지만.
올림픽 근무를 하며 우리나라 하청업체 시스템이 얼마나 썩어빠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IOC에서 하청을 '어떤 업체'에 내줬고,
그 업체는 한진에 하청을 낸다.
그리고 한진물류는 나를 고용한 업체에 하청을 낸다.
이것만 해도 3단계의 하청이 이루어지는데, 중간에서 떼먹는 돈만 아니면 난 돈 많이 벌었을거다.
돈을 많이 벌긴 했다.
하루 야간 12시간 근무에 휴일없이 폐막식까지 쭈욱 달렸다.
하루 12만원씩 받았는데, 역시 나에게는 손해보는 장사였겠지만, 업무의 난이도가 낮다는 것과 내가 하고 싶던 경험이라는 점에서 굳이 불만갖지 않고 만족스럽게 일했었다.
게다가 슈퍼스타 심석희와 사진도 찍는 영광을 누렸으니 난 아~주 괜찮았다.
하지만 불행은 느닷없이 다가온다.
난 이번 경험으로 한진애들이 일을 얼마나 못하는지 알았다.
해외 선수들의 입국 시기야 가지각양일 수 있었다.
굳이 개막식을 볼 필요가 없이 본인들의 일정에 맞춰 들어오면 되는거니까.
근데... 나가는 날은 일률적인게 맞잖아... 폐막식 전후로 나가는게 뻔하잖아.. 당연하잖아. 생각할 수 있는 범위잖아.
마지막날 밤에 무지 힘들거라는 예상이 들었고, 2주전인가? 관리자들에게 마지막날 인원을 늘려달라고 했다.
반려먹었다.
한진에서 안해준다고 한다.
폐막식날 밤에도 역시 야간물류팀은 나 포함 4명뿐.
이걸 어떻게 하라고요....
보안팀분들이 도와주셔서 겨우 일을 쳐낼 수는 있었다.
그 때.....하아...
슬로바키아 러시아 이탈리아 중국 캐나다 덴마크 일본 독일... 또 어디더라...
여튼 밤새도록 고생이란 고생은 싹 다 하고 결국 덴마크를 제외하고 다 쳐냈다.
덴마크는 오전교대타임과 비슷한 시기에 아웃이라서 그냥 주간팀으로 넘기기로 했다. 나도 빡쳤다.
ㅅㅂ 이걸 네명이서 하게끔 만들다니 제정신인가 한진??
폐막식날 차량에 실린 일본애들의 짐.
이자식들아. 분산투자 모르냐.
일본....이놈들때문에 내 허리가 나갔다.
예네들 진짜 전체주읜가? 출국할 때 모든 짐을 한꺼번에 다 내놓더라.
위의 사진이 바로 일본팀의 캐리어들인데, 이거하다가 허리나갔다.
그리고 아직도 회복이 안되고 있다. 병원에 가도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아픈데...
러시아애들도 양아치였다.
러시아팀 매니저는 이야기도 통하고 젠틀했는데, 선수놈들이 약속을 안지켜서 가뜩이나 없던 인원과 차량을 2시간 가량이나 낭비하게 되었다.
할말은 많지만 더이상 하지는 않겠다.
내가 지금껏 본 여자중 제일 아름다운 민족은 우크라이나였는데, 여기서 뒤집어졌다.
핀란드 빙상팀 여자 선수들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민족이었다.
걔네들 진짜.... 인형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생길 수가 없다.
사진을 못찍어서 아쉽다.
북한...애들도 봤다.
얘들이야말로 진짜 사회체제가 전체주의라서 마지막날 아침에 전부다 모여서 다같이 나갔다.
다행히 얘들 짐은 우리가 맡지 않았다.
음.....
영상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순발력이 그에 미치지 못해서 못찍었다.
아쉽당.
북한애들이 묵는 아파트에는 경비가 항시 대기하고 있었고, 창문에는 인공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여러모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수호랑 오랜만에 보네.
선수촌 체크인하는 동의 화이트보든데, 다국적 낙서로 화합을 강조한 이것은 진정한 올림픽정신.
여튼 보람찬 한달간의 열정이 끝났다.
이제 진짜 나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왔다.
한국에서의 취직은 내 나이, 내 경력에 물건너갔다고 생각하고, 나는 계획대로 캐나다에 가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아로 새겼다.
1년안에 3000만원을 더 벌어서 캐나다로 나가리라!
라는 슬로건을 걸고 올해를 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아직 호주물이 덜 빠져서 하게 된 미친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알바 혹은 비정규직을 하며 한해에 3000만원을 세이브한다고? 하하하하하.
그러려면 한달에 250만원을 세이브해야하네??
...공장밖에 없구나.
공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암흑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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